[촉법소년 심층해부②] 그들의 '학교'

학교 폭력 사건에 자주 연루되어온 14살 A 군. 공부는 전교 꼴등 수준이었지만, 체대 입시를 준비하는 형을 따라 권투를 오래 배워 동네 중학생들에겐 ‘짱’으로 유명했다.

 

"중학교 1학년 됐는데 학교 애들이 너무 약해보여서요. 어디서 온 누가 세다고 하면 걔네 찾아가서 한번 싸우자 그러고.”

 

A 군은 중학교 1학년 때 학교폭력위원회만 6차례 불려 나갔다가 결국 강제전학을 당했다. 이후 성폭행 사건에 휘말려 서울소년원에까지 오게 됐다.

 

◈학교는 ‘일진부터 왕따까지’ 계급사회

 

A 군은 “중학교에 처음 들어가면 누가 센 애인지 알 수 있다”며 “딱 봐서 아는 그런 게 아니라, 어느 초등학교에선 누가 센 애였다는 소문이 있다”고 전했다.

 

서울 남부지방법원에서 소년부 재판을 맡고 있는 박종택 부장판사는 “학기 초반 내부에서 결정된 일진부터 왕따까지의 계급 사회가 1년이 넘게 지속된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말처럼 요즘 학교는 ‘일진’부터 ‘왕따’까지, ‘모범생’에서 ‘꼴통’까지 정교하게 줄 세워진 서열 세계다.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아이들 대부분이 학교에서 ‘찍힌’ 불량 학생일 거라고 지레짐작하면 곤란하다. 촉법소년은 이 서열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촉법소년은 때론 또래집단의 ‘영웅’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경찰 조사를 받거나 보호처분을 받은 경력은 또래에게 자신이 얼마나 ‘센’ 사람인지 드러낼 수 있는 좋은 자랑거리가 된다.

 

서울 강서구의 중학생 김모(15) 양은 “경찰서나 학교 선생님한테 불려가서 혼나도 반성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떠벌린다”며 “나 이렇게 센 애다, 건들지 마라 이런 식으로 느끼는 애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초등학생들을 비롯한 촉법소년들의 학교 폭력은 언어폭력이나 따돌림 정도를 넘어서며 어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4월 서울 구로구에선 한 초등학교 5학년생은 같은 학교 동급생이 자기 욕을 하고 다닌다며 청소용 락스를 머리에 들이부었다.

 

지난 9월 인천에선 초등학교 6학년생들끼리 카카오톡으로 욕설을 주고받다가, 칼을 들고 동급생을 찌르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아무리 어른들을 놀라게 하는 범죄를 저지른다 한들, 처벌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3 청소년 유해환경 접촉 종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폭력 가해 경험이 있는 중학생의 81.1%가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응답했을 정도다.

 

◈어려지는 ‘학교폭력 가해자’…초등학교에도 만연한 ‘일진문화’

 

학교 폭력을 휘두르는 아이들은 ‘무서운 중2’보다 더 어려졌다. 실제로 가해 연령은 점점 어려지고 있는 추세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신순갑 정책위원장은 "1996년 처음 학교 폭력 실태조사를 할 때는 고등학교 2학년이 제일 많았다"며 "18년이 지난 지금은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1학년으로 내려갔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초등학생 학교폭력 가해학생은 2010년에 비해 3.6배 증가한 2390명을 기록했다. 3년 전보다 3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학교폭력을 경험하는 빈도도 중학생이 고등학생에 비해 확연히 높다.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중학생 6.1%가 1년에 한두 번은 집단 따돌림에 참여한다. 고등학생(2.3%)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학교에서 일진이나 빵셔틀 같은 '서열 문화'를 경험하는 나이도 예전보다 어려져 초등학생 고학년이면 이미 고착화된다.

 

학교폭력 피해자가족협의회 조정실 회장은 “일진이 초등학교까지 내려가 애들끼리도 ‘쟤는 일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며 “결국 피해를 당한 아이들이 부모한테 얘기하지 못하는 이유도, 걔네(일진)가 무섭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현장 체감 범죄연령 확실히 낮아져” vs "환경 고려가 우선“

 

신순갑 정책위원장은 "현장에서 느끼는 건 범죄 연령이 확실히 어려지고 있으며 저연령화가 엄청나게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지금은 일률적으로 14세 미만이면 방화든 살인이든 형사적 저촉을 일체 안 받지만, 결국은 처벌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것.

 

조정실 회장도 “가해 학생이 강제전학을 가도 나머지 애들이 '너 때문에 가해학생이 전학 갔다'며 오히려 피해 학생을 괴롭히고 공격한다”며 “다른 아이 교육 차원에서도 반드시 처벌은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만만치 않다. 학교폭력 사건은 오히려 ‘진짜’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종택 판사는 “왕따를 당하던 피해자가 어느날 갑자기 볼펜으로 왕따를 시키던 아이를 홧김에 찌를 경우, 표면상의 ‘가해자’는 오히려 왕따 피해자”라며 “얘를 엄벌하면 그 처벌에 납득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런 환경에 대한 고민 없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학교 폭력 문제에 접근하다 보면, 결국 드러나는 사건만으로 피해자와 가해자를 섣불리 나누는 피상적 대책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상담교사 등의 충분한 인프라가 부족한 학교 현장에서, 교사에게 상처받은 아이들을 무작정 처벌로 일관하는 게 능사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박종택 판사는 “학교에선 ‘너희는 우리반 점수 깎아먹는 아이들’, ‘나쁜 짓하는 애들’로 지목한다”며 “이런 아이들을 ‘면학 분위기 조성’이라는 수단으로 접근해 혼내다 보니 그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상처를 입고 억울하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청소년계 경찰은 그 지역사회에서 오래 근무하며 그 지역과 학교, 일진 계보를 꿰뚫고 있다”며 “처벌 위주가 아닌 문제 해결 입장에서 접근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2013-10-01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