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이면 한국감정원 건물에 입주하려던 서울 강남경찰서의 이전 계획이 백지화된 것으로 25일 확인됐다.
이에 따라 '가건물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 강남서 직원들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당초 강남서는 오는 10월중 현 장소에서 300m도 채 안 떨어진 한국감정원 건물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기존 건물을 허물고 신축 경찰서를 짓는 동안, 이 빌딩 전체를 빌리기로 한 것.
강남서 건물이 대치동에 지어진 건 지난 1976년 12월. 이후 수십 년째 낡은 건물에 머물며 이전을 갈망해온 터라, 한국감정원 건물은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11층짜리 한국감정원 건물은 일단 강남서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수천 개에 달하는 각종 장비와 350여명의 경찰들이 여유있게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규모도 크다.
무엇보다 해당 건물은 대구혁신도시로의 이전으로 향후 2년 동안 비어있다가 철거될 예정이다. '2년만 쓰고 나갈 임차인'을 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을 건물주, 삼성생명 입장에서도 똑 떨어지는 궁합이었다.
하지만 일부 언론의 보도가 건물주인 삼성생명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게 강남서 직원들의 볼멘소리다.
지난 7월 중순 한 신문이 "삼성생명이 강남 지역을 관할하는 강남서의 눈치를 봐 대폭 할인된 가격에 임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논리를 들고나오면서, 이른바 '고춧가루'를 뿌렸다는 것이다.
이런 보도 이후 삼성생명 내부에서는 "임차를 안주더라도 빈 건물로 두는 게 낫다"는 말까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생명 측은 계약 무산에 대해 "반드시 '특혜성'이란 기사가 났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그런 보도로 인해 부담을 느낀 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강남서 한 관계자는 "삼성생명도 주주들은 물론 금융감독원이나 공정거래위원회 눈치도 봐야 할텐데, 요즘처럼 대기업 총수가 구속되는 마당에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고 판단한 것 같다"고 했다.
또다른 강남서 관계자는 "계약금만 안 줬지 거의 계약이 성사된 상황이던 걸로 알고 있다"며 "잘못된 언론 보도가 다 된 밥에 재를 뿌렸지만, 그렇다고 계약을 깨는 삼성생명도 이해할 수 없다"고 씁쓸해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가건물에서 겨울이면 추위에 벌벌 떨고 여름마다 땀 뻘뻘 흘리며 범인을 잡아야 하나".
바쁜 업무로 수염만 덥수룩해진 한 강남서 경찰은 턱을 매만지며 읊조렸다.
2013-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