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도 소용없어요. 서울시에서도 서초구청의 도시개발계획은 터무니없다고 반려하는데 내 땅에 내 집도 못 짓게 하는 것은 분명한 월권입니다".
서울 방배동 511단지 일대 국회단지 땅 소유자들의 법정 대리인 이모(51) 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이 곳에 집을 짓기 위해 6년째 재판중인 이 씨. 노후를 보내거나 자녀들에게 물려줄 집을 지으려는 고령의 땅 소유주들을 대신해 이 씨는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6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내 땅에 내 집 마련' 꿈은 제자리걸음이다. 1만여 평(3만3240㎡ 상당)의 땅에 겨우 집 한 채만 덩그러니 들어섰을 뿐이다.
지긋한 어르신들의 발목을 잡은 것은 다름아닌, 서초구청이다. 이 씨는 “서초구청이 실행가능성 미지수인 '공영개발'을 빌미로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 서초구 "주택단지조성" vs 서울시 '자연녹지지역' 개발 반대
서초구청은 20여년 전 군사시설보호구역이었던 '국회단지'의 개발제한이 해제되자, 1990년대 중반부터 임대아파트 등을 짓겠다며 용도지역변경과 주택지조성사업지구지정을 서울시에 요청해왔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곳이 토지관리계획상 '자연녹지지역'이라는 이유로 "저층 중심의 양호한 주거지로 관리하겠다"며 서초구청의 요청을 반려해왔다.
그럼에도 서초구청은 택지개발사업과 임대주택단지 조성사업 개발을 계속 추진했고, 2008년부터는 외국인 전용 주거단지인 '글로벌타운' 조성을 내세우며 토지소유주들에게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서초구청의 ‘거창한’ 도시개발은 첫 삽조차 뜨지 못했다. 서울시에서 '국회단지 일대 개발 불허' 방침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서초구청의 무리한 도시개발계획을 알게 된 지주들은 "공영개발 보상금 필요없고 그저 내가 살 집 짓겠다"며 서초구에 건축허가를 요청했다. 그러나 서초구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결국 지난 2008년 당시 74세 이모 씨는 서초구청을 상대로 건축불허가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이 씨는 법정에서 승리했다. 이 판결은 2009년 서울고법에서 항소기각 판결, 2010년 대법원 상소기각 판결로 확정됐다.
2년여 동안의 긴 소송 끝에 집을 지을 수 있게 된 이 씨. 하지만 현재까지 1만여 평 부지에 ‘내 집’을 지은 사람은 이 씨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 서초구청 "대법원 판결은 구속력 없어"… '재량권 남용' 비난 봇물
6년 동안 몇 번의 소송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땅 소유주들은 서초구의 막무가내 행정을 눈치챘다.
땅 소유자들이 지난 2012년 건축허가를 받기 위해 서초구청장을 상대로 한 '도시디자인 심의신청불허가처분취소' 소송 행정법원 판결문에는 "서초구청은 건축법상 근거가 전혀 없는 내부 방침으로 2008년 10월 6일부터 2년 동안 건축허가를 제한했다"고 적시됐다.
"건축허가를 제한할 수 있는 자는 시·도지사에 한정된다"는 건축법 제18조에 따라 구청장은 건축허가 제한 권한이 없는데도 내부방침을 내세워 지주들의 권한을 막았다는 설명이다.
또 서초구청이 내부적으로 정한 건축허가 제한이 만료될 무렵 토지 소유자들이 다시 건축허가를 신청할 기미를 보이자, 서초구는 2010년 9월 서울시에 2년 동안 '건축허가제한'을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축법에 따르면 제한기간을 연장할 때에는 '1회'에 한해 '1년'만 연장가능하다. 그러나 서초구청이 건축제한기간을 또다시 2년 연장한 것은 2008년 시행한 건축허가 제한은 서초구청의 '월권'이었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결국 서울행정법원은 "서초구청이 내부방침에 따라 2년, 건축법에 따라 3년(1년 연장기간 포함) 모두 5년 동안 건축허가를 제한해 토지소유자들의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했다"며 "서초구청의 건축허가 심의 거부 행위는 위법하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대해 구청 관계자는 "개별 건에 한정된 것이고 이는 심사를 한 것일 뿐 법률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또 '건축불허는 위법'이란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대법원 판결이 구속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 서초구청 "난개발은 서울시 탓…구룡마을은 되고 우리는 안되나"
하지만 서울시 입장도 단호하다. 서초구청이 추진하려는 도시개발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해봤지만 자연녹지 보존·존치를 위해 어떠한 행위도 할 수 없다는 의견을 명백하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서울시 관계자는 "서초구에서 계속 공영개발 사업을 빌미로 국회단지 일대에 건축허가를 제한해달라고 요청을 하는데 제한할 명분도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초구청은 "서울시의 2030 도시기본계획에 국회단지 재개발 계획이 들어가도록 추진하고 있다"며 "이곳이 난개발된 것은 오히려 서울시의 책임"이라고 반박했다.
국회단지에 무허가 건축물과 폐고물상 등이 무분별하게 들어서 황폐화된 것이 서울시에서 계속 서초구의 공영개발을 허락해주지 않기 때문이란 것이다.
서초구청은 또 "서울시는 자연녹지지역이라 도시개발을 허가해줄 수 없다고 하는데, 국회단지 녹지지역은 이미 많이 훼손된 상태"라며 "녹지를 훼손하려는 것이 아니라, 훼손된 녹지를 재개발로 복구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청 관계자는 "강남구 구룡마을도 30년 걸려 공영개발을 허가받았는데, 구룡마을은 되고 국회단지는 안 된다는 것이냐"며 "공영개발만 들어가면 지주는 물론, 주민들 민원도 한방에 해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3-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