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텔 입주한 지 하루만에 내쫓긴 사연

 

서로 다른 토지주와 건물주의 법적 분쟁 끝에 명도집행이 결정되고 철거 작업이 시작되면서, 세입자 300여 명이 졸지에 거리에 나앉게 생겼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이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 위치한 S 오피스텔에 건물 철거를 위한 명도 집행을 실시한 6일 오전 10시.

하나둘 모여드는 용역 직원들과 경찰의 모습이 보이자 오피스텔 1층 로비에 모인 세입자들 사이에는 전운(戰雲)마저 감돌았다.

 

◈“어제 사무실 들어왔는데 오늘 쫓겨나…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짓”

김모(46) 씨는 명도 집행이 진행되기 불과 하루 전 이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얻었다.

추석 전후로 간단하게 상품 유통 관련 업무를 보려던 계획은 ‘내일 아침 용역 직원들이 들이닥쳐 건물 철거를 한다더라’는 소식에 물거품이 됐다.

김 씨는 “어제 들어왔는데 오늘 이런 얘기가 나오더라, 지금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나오니 갑갑하다,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냐”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어제 사무실을 얻었다던 장모(57) 씨도 “새벽 5시부터 나와서 입구를 지키고 있다, 결국은 속은 거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하루 만에 거리로 나앉는 상황에 처한 것도 황당하지만 보증금을 못 받을까 봐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장애인 김모(56·여) 씨는 “장애인들에겐 (보증금) 백만 원이 일반인들 일억만큼 피 같은 돈”이라며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짓”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어떻게든 명도 집행이 이뤄지는 것을 막아보려고 새벽부터 나와 엘리베이터 운행도 정지시키고 오피스텔 입구 곳곳을 막으며 대비 태세를 갖췄다.

집기 등을 실어 나르는 화물차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주차장 입구에도 차량을 삼중, 사중으로 빽빽하게 주차해뒀다.

오전 11시. 집행관과 용역 직원을 비롯해 150명가량이 건물 안으로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몸싸움도 마다치 않으며 격렬하게 대치했지만 불과 10여 분 만에 용역 직원들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김 씨를 포함한 장애인 2명이 수십 명의 뒤섞인 인파에 깔려 구조대의 들것에 실려 나가는 위험한 상황도 연출됐다.

집 안에 있던 세입자들도 몇 명 더 나와 용역 직원들에게 거세게 항의했고 곳곳에선 울음소리도 터졌지만 지하 1층과 지상 1층의 사무실 일부부터 명도 집행이 시작됐다.

오후 12시 30분엔 격분한 세입자 한 명이 건물 난간에 올라서서 뛰어내리겠다며 소동을 피우다 2분 만에 들어가는 등 아찔한 장면도 이어졌다.

강제 집행이 이뤄진 지 한 시간 만에 전기와 물이 끊어졌다. 오후 즈음엔 가스도 끊어지고 인터넷도 먹통이 됐다.

80여 세대 가까이는 짐이 법원 지정 보관소로 옮겨지고, 유리창과 붙박이장 등이 부서졌다.

세입자 한 명은 “당장 오늘 잘 곳이 없으니 찜질방에 가야겠다”고 했다. 그야말로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1차 철거 이후 불안에 떨며 지내…보증금 받기? 하늘에 ‘별’ 따기”

 

사실 이번 철거 작업은 지난해 11월 2일 1차 집행에 이어 두 번째다.

이 오피스텔에 2011년 12월부터 전세를 얻어 살던 전모(35) 씨는 지난해에도 강제 철거를 겪었다.

전 씨는 그땐 강제집행이 이뤄진다는 것도 통보받지 못했다고 했다. 퇴근 후 돌아와 보니 전 씨의 보금자리는 세면대와 붙박이장이 박살난 아수라장으로 변해있었다.

전 씨는 “그 이후 주민들 모두 불안에 떨며 지냈다, 보증금 받기는 하늘에 별 따기고 보증금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전했다.

역시 1차 강제 철거를 겪은 임모(34) 씨는 “그 이후 끊임없이 또 강제 철거가 있을 거란 소문은 흘러나와서 여자들은 무서우니까 보증금 포기하고 그냥 떠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임 씨는 “오늘 집행된다는 걸 우리도 어제 알았다, 지금 출근도 안 하고 나와 있는 상황”이라며 참담한 심정을 내비쳤다.

전 씨는 본인이 입주하기 전 관리소장에게 들은 건 “건물주와 토지주가 다르긴 한데 200세대나 사는 대규모 오피스텔이고 두세 달 안에 다 해결될 거다, 등기부 상으로도 깨끗해질 것”이란 얘기가 전부였다고 말했다. ‘철거’, ‘명도집행’ 등의 단어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지상 12층, 지하 3층 규모의 이 오피스텔은 220가구가 입주했다. 이곳에 사는 주민은 약 300여 명 가까이다.

구로구청에 따르면 이 오피스텔의 부지는 당초 학교법인인 A 학원의 부지였지만, A 학원이 학교를 폐지하면서 해당 부지 일부를 공원부지로 기부채납하고 오피스텔을 지을 수 있게 구청으로부터 허가받았다.

하지만 A 학원이 파산하면서 건물주가 성원건설로 바뀌었다가, 성원건설도 부도가 나자 건물주가 B 주식회사로 바뀌었다.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해당 토지가 경매로 넘어가 제 3자가 낙찰을 받아 토지주와 건물주가 나눠지면서 분쟁이 시작됐다.

건물주와 토지주는 서로 건물과 토지를 매입하려고 싸웠지만 양측의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결국 오피스텔 건물은 준공허가를 받지 못한 채 공사를 마무리하고 입주자를 받게 됐다.

이에 대해 토지주는 불법점유물 철거소송을 진행해 대법원으로부터 "건물주는 건물을 철거하고 토지를 토지주에게 돌려주라"는 승소 판결을 받았다.

구청은 ‘건물 철거’ 판결이 났는데도 세입자들에게 전입신고 및 확정일자를 해준 데 대해 "판결 이후 2009년 12월부터 2010년 6월 전입신고를 거부했으나, 한 세입자가 거부처분 취소 행정 소송을 제기해 법원이 ‘처분 취소’ 판결을 내려 이에 따라 전입 신고를 수리하게 된 것"이라고 답했다.

또 “1차 대집행 이후에도 언제든지 대집행이 이뤄질 수 있어 피해가 있을 수 있음을 전입신고시 충분히 안내해 처리했는데도 1차 집행 이후 현재까지 33세대가 전입신고를 한 상태”라고 해명했다.

 

 

2013-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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