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동물 사료 금지 강화'를 한미 쇠고기 협상의 최대 성과로 꼽았지만, 미국 정부는 이와 반대로 훨씬 '완화'된 수준의 조치를 내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구체적 협의 없이 이 문제를 사실상 미국에 '백지 위임'한 것으로 밝혀져, '졸속 굴욕 협상' 비판이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청와대는 지난 8일 관계 수석들이 모두 나선 가운데 비공개 브리핑을 갖고, "우리는 실패한 협상으로 보지 않는다"며 한미 쇠고기 협상을 '진전'이라고 강변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과 다른 나라의 협상 내용과 비교해봐도 훨씬 강화된 조건으로 합의했다"면서 두 가지를 꼽았다.
합의문에 '동물사료 금지 조치'를 명문화하고, 생후 30개월 여부를 분류하도록 만들었다는 것.
이 관계자는 특히 "동물사료 금지를 명문화한 건 우리 요구에 의해 한 것"이라며 "협상을 지연하면서까지 이를 지켰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이같은 설명과는 달리, 미국 정부는 오히려 '동물 사료 금지 조치'를 당초 방침보다 크게 완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2005년 '도축검사에서 불합격된 모든 연령의 소에서 뇌와 척수가 제거되지 않으면 동물 사료로 사용할 수 없게 한다'는 규정을 입법 예고한 바 있다.
우리 정부도 지난 2일 이 규정을 근거로 "광우병 감염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대대적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FDA는 한미 쇠고기 협상 이후인 지난달 25일 연방관보를 통해 '30개월 이상 소에 대해서만 뇌와 척수를 제거한다'는 규정을 공포했다.
정부의 당초 설명보다 크게 후퇴한 것일뿐더러, 미국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에 '치명적' 하자가 발생한 것으로 간주, 재협상을 요구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물론 미국이 이처럼 '동물 사료 금지' 조치를 완화하고 나선 데에는 우리 정부의 책임도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청와대는 "우리측 요구로 강화된 동물사료 금지 조치를 명문화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구체적 협의 없이 사실상 미국에 '전권'을 넘겼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11일 "미국이 당연히 강화된 조치를 공포할 것으로 믿고,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협의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홍보' 내용과 실제 미 정부의 '공포' 내용이 다른 배경에 대해서는 "영문 자료를 해석하는 과정에 실수가 있었다"고 이유를 댔다.
그러나 정부는 "우리가 미국 쪽에 명확히 요구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재협상을 요구할 수는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며, 미국 입장을 수용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결국 청와대가 내세운 '최대 성과'가 '최대 패착'으로 결론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2008-05-12 오전 10:4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