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더미에서 피어난 천상의 목소리'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겼던 지라니합창단. 이들이 부른 '잠보(Jambo)', '도라지' 등의 합창곡은 이미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퍼지며 많은 화제가 된 바 있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 공개된 어린이 단원들의 사연이 실제와는 달리 상당부분 부풀려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반면 지라니문화사업단 측은 사실무근이란 입장이어서, '천상(天上)의 화음'을 자랑하던 합창단이 바야흐로 심각한 불협화음에 빠지고 있다.
◈ "쓰레기 뒤지며 마약하던 아이? 실제로는 모범생"
지라니합창단은 아프리카 케냐 단도라지역 극빈촌인 고르고초 마을의 아이들로 구성된 어린이 합창단으로, 지난 2006년 11월 공식 창단됐다.
창단 이후 수십 회의 국내외 공연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극심한 빈곤 속에 방황하던 아이들이 지라니합창단을 만나 변화했다"고 홍보해왔다.
하지만 최근까지 사업단에서 합창단 관련 업무를 맡아온 이들이 "허위 홍보를 통한 비윤리적 모금"이라며 폭로하고 나섰다.
사업단 홈페이지에는 '쓰레기장에서 짐승들과 뒤섞인 채로 음식 쓰레기를 찾는 이 어린 영혼들에게 '학교생활'이나 '공부'같은 낱말은 그 실체도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고 소개해놨다.
하지만 지난 7월까지 사업단에서 일한 A 씨는 "단원 중 음식 찌꺼기를 찾던 학생은 단 한명도 없고, 전원 현지 학교에 공문을 보내 재학생 가운데 오디션을 통해 뽑았다"고 밝혔다.
이 마을이 빈민가이며 단원들의 가정환경이 어려운 건 맞지만, 단원들의 환경 묘사가 상당부분 과장됐다는 얘기다.
가령 1기 합창단원이던 라우렌스는 착실하게 학교를 다니던 모범생이었지만, 합창단 홍보 과정에서 '마약을 하던 깡패'로 그려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업단 임모(63) 회장은 지난 2010년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라우렌스는 원래 쓰레기 줍던 깡패였다"며 "노래를 좋아해 합창단에 따라온 뒤 완전 모범 청소년이 됐다"고 소개한 바 있다.
실제로 지난 2008년 또다른 언론에 소개된 라우렌스는 '입단 전에는 여가시간에 집안일을 돕거나 슬럼 안에서 혼자 공놀이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입단후 매우 바쁘면서도 활동적이고 즐겁게 바뀌었다’고만 묘사돼있다.
지난 8월까지 사업단에서 일한 B 씨는 "라우렌스는 자기가 어떻게 소개됐는지 현지 직원과의 귀띔으로 알게 된 뒤, 동영상 인터뷰를 통해 '나는 그런 애가 아니었다'고 고백했다"고 말했다.
자신은 쓰레기를 줍던 깡패였던 적이 전혀 없다는 고백은 동영상 파일로도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라우렌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인터뷰 내용을 사용할 경우 법적 대응하겠다"는 진술서를 보내왔다.
직원들은 "우리가 인터뷰한 걸 나중에 경영진이 알게 됐다"며 "그래서 라우렌스가 말을 바꾸게 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사연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된 건 비단 라우렌스뿐이 아니다.
경영진은 합창단을 소개할 때마다 "단원 대부분이 고아"라고 했지만, 편부모 가정이 많긴 해도 고아 비율은 1% 미만이라는 게 내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사업단 임 회장은 "마약 얘기는 쓰레기더미 주변에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그걸 설명하는 과정에서 와전된 것"이라며 일부 오류를 시인했다.
다만 "라우렌스는 본인이 직접 언론 인터뷰에서 거리의 부랑아였다고 말했다"며 "아이들 모두가 고아라고 한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또 "현지 학교를 통해 아이들을 모집한 적이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학교'라고 보기엔 굉장히 열악한 곳"이라며 "실제로 우리 덕분에 학비를 내지 못하던 아이들도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됐다"고 항변했다.
◈ "대학 지원도 '조건부 혜택' 불과…문제제기하면 바로 해고"
내부 관계자들은 또 합창단원이 되면 무조건 대학까지 학비를 지원한다지만 '조건부 혜택'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7월 작성된 학비 지원 관련 문서에는 '입단후 1년 안에 탈락하지 않아야 정회원 자격이 부여되며, 정회원이 되어야 초등학교(Primary) 학비를 지원한다'고 돼있다.
특히 고등학교(Secondary)와 대학 학비 지원을 받으려면 모두 24명으로 구성되는 콘서트팀에 합류해 해외 공연 투어를 2회 이상 완수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있다.
전 직원 A 씨는 "합창단원이 되면 대학까지 다 보내준다고 선전하지만 실제는 아니다"라며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일단 노래를 잘해야 하고 무엇보다 아프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연이 너무나 상업적이고 아이들로 앵벌이하는 느낌이 들었다"며 "공연의 목적은 수익금일 뿐"이라고 잘라말했다.
이런 운영 방식에 회의감을 느낀 직원들이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돌아온 것은 '해고 통지서'였다.
A 씨는 지난 7월 사무국장으로부터 '해고 사유가 없다' 내용을 문서로 확인받았지만, 불과 이틀 뒤에 '직원 선동, 허위사실 날조, 단체 대표 비방'이란 이유로 해고 통지를 받았다.
함께 문제를 제기했던 B 씨나 C 씨도 비슷한 시기 해고되거나, 회의감을 느껴 스스로 활동을 그만뒀다.
이에 대해 사업단 임 회장은 "해당 직원들은 계약과 달리 월권 행위를 한 적이 많았고, 현지 직원들에게 막말하거나 허위 사실로 직원들을 선동했다"고 주장했다.
또 '조건부 대학 지원'에 대해서도 "1기 단원이었던 아이들 가운데는 대학까지 지원받은 아이도 있다"며 "지라니합창단은 구호 사업이 아닌 문화 사업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3-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