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일자리 만드는 ‘과잉친절 신드롬’

 

영화 상영이 막 끝난 서울 시내 한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 앞. 문 앞에 늘어선 커다란 쓰레기통 위에는 “분리수거는 저희가 하겠습니다”라고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한 손에 콜라 컵, 다른 한 손에는 먹다 남은 팝콘 상자를 든 관객들은 아무렇지 않게 먹다 남은 음식물, 종이 상자와 플라스틱 빨대를 한 통에 던져 넣는다. 모두 분리수거를 대신해 주는 ‘친절 서비스’ 덕분이다.

백화점 주차장 앞에서도 이젠 낯익은 풍경이 펼쳐진다. 줄지어 선 차량 앞에서 현란한 손동작과 함께 무릎을 굽혔다 폈다 율동을 하는 이들은 ‘고객 차량 안내’를 돕는 주차 요원이다.

평소에 무심코 지나치지만 생각해보면 지나치다 싶은 서비스다. 모두 ‘손님이 왕’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과잉 친절 서비스‘의 예다.

◈ 차고 넘치는 배려? 실효성은 '글쎄'

실제로 정작 백화점을 찾은 손님들은 “주차 안내 표지판을 찾아가기 바쁘지 도우미들의 현란한 안무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서울 중구의 한 백화점에서 만난 김모(52) 씨는 백화점 주차 도우미의 율동에 대해 “미안하지만 솔직히 보고 있자면 민망하고 멋쩍다”고 털어놨다. ‘딸 뻘로 보이는 아가씨‘들이 하루 종일 길에 서서 율동을 하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다.

 

극장의 과잉 친절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서울 양천구의 한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을 찾은 구모(20) 씨는 “커피숍 같은 데서는 용기와 음료를 직접 분리수거한다”며 “하지만 극장에서는 분리수거할 필요가 없다고 하니까 다들 영화 보고 나와서 한꺼번에 버린다”고 말했다.

편리함은 잠시. 음식물이 뒤범벅된 쓰레기를 다시 골라내 분류하는 작업은 영화관 직원들이 소위 ‘이모님’이라고 칭하는 일용직 미화원들의 몫이다.

한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이모님들이 쓰레기를 다시 재분류한다”며 “고객 불편을 덜어드리고 더 신속하고 안전하게 분리수거를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뿐 아니다. 시민들은 "대형 마트에서 물건을 고르는 소비자를 직원들이 쫓아다니는 것”이나 “가전제품 매장 직원이 물건을 구매한 소비자의 개인 연락처로 끊임없이 ‘안부 인사’를 건네는 것” 등을 부담스러운 과잉 친절로 꼽았다.

◈ 과잉친절 '정말 최선입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권력을 갖는다.

하지만 ‘소비자는 왕’이라는 사회 분위기는 일터의 노동자들에 대한 무리한 요구를 당연시하는 현상도 가져왔다.

지난 4월 ‘라면을 제대로 못 끓인다’는 이유로 여승무원을 폭행한 이른바 ‘라면 상무’ 사건이 대표적이다.

‘친절 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내몰리는 직종은 비행기 승무원만이 아니다. 콜센터 직원이나 대형마트 판매원 등 일선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판매직 또는 고객 서비스를 담당하는 경비·청소직까지 즐비하다.

특히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늘어난 장년층 이상 구직자들이 저임금에 과잉 친절도 감수하면서 일명 '나쁜 일자리'에 몰리는 추세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60대 이상 장년층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07년 이후 꾸준히 60%를 상회하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연구위원은 “CS 친절교육은 치열한 시장경제의 경쟁 환경 속에서 한국 기업의 전략이 됐다”며 “최근 호텔과 유통업부터 병원까지도 과도한 친절,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불편하기까지 한 친절을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들은 직원의 곤욕을 짜내는 저임금의 과도한 친절 노동에 기댈 게 아니라, 연구개발이나 차별화된 제품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경영 전략에 주력해야 한다”며 “기업 문화가 먼저 바뀌어야 소비자 인식도 따라서 바뀐다”고 강조했다.

 

 

2013-08-29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