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자동차회사인 현대자동차가 자사에 비판적인 집회를 막기 위해 사원들을 동원하며 '유령 집회'를 열어 사내 불만이 높아가고 있다.
서울 양재동에 있는 현대자동차 본사에서 근무하는 30대 초반의 A 씨.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 마니아였던 A 씨로서는 '꿈의 직장'에 다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A 씨도 "본사 서관 2층 대강당으로 오라"는 지시만 떨어지면 어깨에 힘이 쭉 빠진다.
아침 9시와 밤 9시에 대강당으로 집합하라는 지시는 곧 회사가 진행하는 '유령 집회'에 참여하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가짜 집회는 현대자동차 그룹에 비판적인 집회를 막기 위해 열리는 가짜 집회라는 게 A씨의 설명이다.
가짜 집회에 참석할 사원들은 팀마다 할당된 인원에 맞춰 미리 참석조를 짜둔다.
대강당에 모이는 집회 참석 사원은 대부분 차장급 이하인 청장년층 사원들. 막으려는 집회 규모에 따라 인원은 다르지만 적게는 50명에서 많을 때는 2백 명도 넘는다.
A씨는 "몇 년째 되풀이됐지만 특히 올해 초에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지회가 장기간 농성을 벌이면서 가짜 집회의 강도도 덩달아 높아졌다"며 "겨울밤이나 여름 한낮에 집회에 동원되면 사원들이 싫어하지 않겠느냐"고 털어놨다.
집회에 나가기 전 대강당에 모인 인원들을 관리하는 인력은 사내 보안관리팀.
이들은 집회 전 5분가량 사원들에게 오늘 막아야 할 집회는 누가 주최하며, 이들은 왜 회사에 해가 되는 존재인지부터 노조와 이야기하지 말 것, 몸싸움을 벌이지 말 것 등의 내용을 담은 일종의 '정신교육'을 진행한다.
A씨는 "집회라고는 하지만 정작 사원들이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며 "보안관리팀이 나눠주는 '기업경쟁력은 곧 국가경쟁력' 등의 내용이 쓰인 띠를 몸에 두르고 조별로 1시간 반 정도 길에 서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12시간 주야 맞교대를 조별로 나누면 대개 1시간 30분씩 2번 정도 서면 그날의 집회가 끝난다. 그동안 함께 온 팀원들과 수다를 떨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서 간신히 시간을 채울 뿐이다.
시간이 다 지나면 다음 교대시간을 기다리느라 대강당에서 다시 대기한다. 그나마 '짬'이 찬 40대를 넘긴 차장급은 일찌감치 의자를 이어놓고 드러누워 코를 골기도 한다.
일이 많은 과장이나 대리급은 보안관리팀의 눈치를 봐가며 화장실에 가는 척 사무실에 들러서 급한 일을 처리하지만, 평사원들에겐 그나마도 '그림의 떡'이다.
A씨는 "개인 시간을 뺏기는데 누가 좋다고 하겠나. 더구나 업무량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어서 일이 많을 때에는 마음만 급해진다"며 "회사에서 지시하니 다들 어쩔 수 없이 따른다"고 답답해했다.
이어 "집회는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하는 건데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집회에 동원되는 게 글로벌 기업에서 일어날 일인가 싶다"며 "이런 일을 하려고 회사에 온 것도 아닌데 회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원을 동원하는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 같아 자괴감도 많이 느낀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또 "(집회를 갖는) 비정규직이 불쌍하기는 하다"면서도 "데모하는 노조 때문에 집회에 자꾸 동원될 때마다 회사도 노조도 이런 집회를 그만두기만 바랄 뿐"이라고 털어놨다.
이러한 '유령집회'가 계속되는 이유는 현행법상 신고한 집회목적과 실제 집회 내용이 달라도 처벌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위한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기업이 가짜 집회를 신고하고 실제로는 집회를 열지 않는 일이 많았다"며 "시민사회가 계속 문제삼자 사원을 동원해서 자리만 채우는 꼼수"라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동원되는 사원으로서는 양심의 가책을 받을 뿐 아니라, 노노(勞勞)간 갈등도 발생할 수 있다"며 "기업이 돈을 써서 집회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현대자동차 측은 "비정규직 노조 등 시위하는 사람들이 회사를 강압적으로 진입하려고 시도해서 회사 입장에서는 인력을 동원해 지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회사를 지키려는 차원에서 정식으로 집회신고를 하고 대응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현대자동차 사원들이 집회마다 두르는 어깨띠에는 '기업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이란 문구가 적혀있지만, 정작 집회에 동원될 때마다 일손을 놓느라 경쟁력은 저하되고 있는 형편이다.
2013-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