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의혹을 규탄하는 촛불 집회가 계속되는 가운데 차벽을 동원해 집회현장을 막는 경찰 대응을 놓고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광복절이던 지난 15일 경찰은 서울 종로 2가 일대에서 시위대를 향해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서울에선 처음으로 물대포를 사용했다.
이날 오전 11시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8·15 평화통일대회'에 참가했던 시민 중 1500여 명이 오후 3시쯤 서울광장을 향해 거리행진을 벌이던 중, 경찰이 종각역 근처에 설치한 차벽에 막히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지난 13일에는 한국진보연대 등 284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정원 시국회의'가 지난 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정치개입 규탄 집회를 방해한 혐의로 김정석 서울지방경찰청장 등을 검찰에 고소했다.
시국회의 측은 "지난 3일과 10일 경찰의 통행제한 조치로 시민이 집회장소에 들어올 수 없었다"며 "경찰이 차량 등을 이용해 집회현장 진입로를 막고 시민들이 집회 현장을 보는 것조차 막는 행위는 집회방해죄와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 박근용 협동사무처장은 "집회 당시 서울광장으로 가는 건널목을 차벽과 경찰력으로 막아 사실상 시민들의 출입이 불가능했다"며 "경찰을 과잉 배치하고 길을 막는 행위는 경찰의 정당한 권한 행사가 아니라고 본다"고 비판했다.
경찰의 집회현장 통제행위 가운데 일명 '닭장차'로 불렸던 경찰 버스로 집회현장을 둘러싸는 '차벽' 조치는 이미 위헌으로 판정난 바 있다.
지난 2011년 6월 30일 헌법재판소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인 지난 2009년 6월 경찰이 서울광장을 차벽으로 둘러싸 시민의 통행을 막은 것에 대해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위헌으로 판결했다.
당시 결정요지에 따르면, 차벽으로 집회현장을 봉쇄하는 경찰의 통행제지행위는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해 비로소 취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일 촛불집회에서 보듯 집회현장에서 경찰의 차벽 쌓기는 계속될 뿐 아니라, 경찰 병력을 배치해 길을 막는 '알박기'나 플라스틱 안내판으로 통제선을 쳐서 통행을 막는 일도 흔하다는 게 시민사회의 지적이다.
경찰 한 관계자는 "위헌 판정 이후 차벽으로 완전히 막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우회로는 마련해둔다"며 "지난 10일의 경우 한정된 집회 공간에 인원이 몰려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버스로 통행로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집회 측은 결국 집회 현장 밖으로 드러내려고 하는 게 당연하다"면서 "현장에서 관리하다 보면 경찰은 시위대가 밖으로 나오는 걸 일단 막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시민운동가들은 이러한 경찰의 집회 통제가 도를 넘어서 집회를 방해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높은 차벽에 가려 집회 현장이 시민들의 눈에 보이지 않음으로써, 외부와 소통하지 못한 채 단순한 소음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박주민 변호사는 "집회 시위를 하는 목적은 시민들과의 소통"이라며 "차벽으로 장소를 제한하면 집회를 고립시키고 의미 없는 집회로 만들어버린다"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차벽 설치가 오히려 집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력을 막긴커녕, 집회 양상을 극단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 2009년 내놓은 '집회·시위에 대한 경찰 대응과 개선 방향 연구' 보고서는 2008년 촛불집회 당시의 차벽 설치 등이 오히려 시위의 폭력성을 증가시켰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차벽은 시위대를 시민이나 의견개진의 대상으로부터 고립시킨다는 의미를 지니며, 이는 시위대로 하여금 차벽을 '넘어서야 할 대상'으로 인식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규정했다.
민변 박주민 변호사는 "1970년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경찰의 집회 대응은 대화와 단계적 대처로 발전하고 있다"며 "차벽 설치는 아예 소통을 막고 참가자에게 절망감을 줘 과격하게 만들 뿐"이라고 지적했다.
2013-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