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로 덥네요. 이렇게 더운데 쪽방에서 견디기가 힘들어요. 나이 많은 노인 혼자 있으니까 생활하기 더 어렵죠".
11일 오후 찾아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뒤편에 있는 '영등포 쪽방촌'. 이날 서울 낮 기온은 33도. 말 그대로 찜통이었다. 잠깐 걸었을 뿐인데, 온몸엔 땀으로 흥건했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쪽방촌 주민들은 방을 나와 나무 아래 그늘에 자리를 잡고 누워있기도 했다.
또 어떤 이는 1평 남짓한 방에 누워 최대한 활동을 자제하는 모습이었고, 일부 주민들은 상의를 탈의하고 반바지만을 입은 채 활동하기도 했다.
영등포 쪽방촌에서 30년을 살아온 권석오(78) 씨는 "육교 밑에 바람이 불고 하니까 거기 가서 쉬고 해요. 집에서는 덥기도 하고 답답해서 못 있죠. 30년 동안 이렇게 덥기는 처음이죠. 견디기가 어렵죠"라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쪽방촌에 선풍기가 보급됐다는 것. 비록 더운 바람이 나오긴 하지만 폭염 속 선풍기 한 대는 이들에게 아주 귀한 보물이다.
물론, 땀이 식어 몸이 끈적끈적해도 맘 놓고 씻을 수 없다. 쪽방촌 한쪽에 마련된 공용화장실에서 목욕을 해야 하는데, 한 사람이 목욕하는 동안 나머지 쪽방촌 사람들이 볼일을 못 보고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권 씨는 "여기는 공동화장실은 있어도 샤워실은 없어요. 다 똑같죠. 내가 씻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화장실 사용을 못 하니 눈치 볼 수밖에 없죠"라고 했다.
이어 찾아간 곳은 서울역 맞은편에 위치한 '동자동 쪽방촌'. 이곳에서도 많은 사람이 더위를 식히기 위해 집 밖으로 나와 바람을 쐬고 있었다.
영등포 쪽방촌과는 달리, 동자동 쪽방촌에는 자그마한 공원이 하나 마련돼 있었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은 이곳으로 나와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돗자리가 있는 사람들은 돗자리를 깔고, 돗자리가 없는 사람들은 박스를 구해 깔고 누워있었다.
건물 내부가 궁금해 한 주민의 도움을 받고 쪽방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둡고 꿉꿉한 냄새가 나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층마다 복도 양옆으로 1평 남짓한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물론 여기에도 공용화장실만 있을 뿐 씻을 수 있도록 별도로 마련된 곳은 없었다. 나무로 된 방 문은 대부분 열려있었고, 그 사이로 속옷만 입은 채 누워있는 사람들도 눈에 띠었다.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복도를 지나 방으로 들어갔다. 1평 남짓한 방에는 옷가지가 벽면에 가득했고, 소형 냉장고와 선풍기 자리를 제외하면 한 사람이 자기에 빠듯했다. 이곳에서 쪽방촌 사람들은 밥을 해먹으며 살아간다.
동자동 쪽방촌에서 40년을 살아온 공옥천(72) 씨는 "쪽방이기 때문에 안 더울 수가 없거든요. 공원에 바람이 많이 부니 돗자리가 있는 사람들은 돗자리를 깔고 돗자리가 없는 사람들은 박스라도 구해서 공원 가서 깔고 누워있는 거에요"라고 말했다.
쪽방촌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은 정부가 주는 지원금으로 살아가는 이들이다. 45만~46만 원 남짓한 돈을 받고 그 중 20만 원 가량은 월세로 나간다. 30만 원이 채 안 되는 돈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하는 처지다.
예전에는 기업에서 후원도 많이 들어와서 그나마 그럭저럭 살 만했는데, 몇 년 전부터는 그런 지원이 거의 없어졌다.
공 씨는 "요즘 물가 보세요. 상추 1000원어치도 안 팔아요. 조금 주는데 2000원이에요. 다른 거 사 먹을 수가 없어요. 한 번 음식을 해놓고 두 끼니를 먹기도 힘들어요. 더워서 찌개 같은 걸 해놓고 놔두면 금방 상해버리거든요"라고 말했다.
이어 "요즘은 도움을 주는 분들도 거의 없고 여러 다양한 단체들이 쪽방에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며 "쌀과 라면 후원받는 것이 갈수록 없어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그러다 보니 이들에게 '희망'이란 단어는 이미 오래전에 잊어버린 존재이기도 하다. "열심히 살면 돈을 벌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나도 잘살 수 있다"는 얘기는 와 닿지 않는 공허한 외침으로만 들린다.
쪽방촌에서 만난 A 씨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보통 여기 있는 사람들 90%가 생활보호 대상자기 때문에 수급받고 있어요. 오로지 하루하루 날만 새면서 살아가고 있는 거고 삶의 의미 없이 삶을 지탱하고 있을 뿐이죠"라고 토로했다.
이어 "여기서 벗어나려고 해야 벗어날 수도 없어요. 돈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여기서 못 떠나는 사람들이 다 그런 거에요. 30년, 40년, 70년 산 사람도 있는데. 떠날 형편이 못되니까 못 떠나는 거에요"라고 덧붙였다.
극히 드물긴 하지만 쪽방촌 이들 중에는 '희망'을 찾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일을 구하기 쉽지 않은데다 겨우 구했다싶었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기 일쑤다.
쪽방촌에서 만난 B 씨는 "희망이 없어 술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많지만 일부는 열심히 살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며 "아르바이트나 단순 노동을 찾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이어"큰 돈은 아니지만 돈을 벌면서 희망이란 단어를 생각하게 됐고 생활도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2013-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