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익은 편안한 팝송에 감미로운 커피 향이 흐르는 신촌의 한 카페.
여유로운 카페 분위기와는 달리, 카페 문을 연 대학원생 박소영(25) 씨는 주문도 하기 전에 재빨리 벽과 카페 곳곳의 기둥을 샅샅이 훑는다.
이 카페에서 손님들이 쓸 수 있도록 마련된 콘센트는 총 16구. 이 가운데 창가 쪽 콘센트는 이미 만원이다.
벽에 우두커니 박혀있는 다른 콘센트에도 흰색, 검은색 플러그와 전선이 어지럽게 꽂혀있다.
속으로 ‘올레!’를 외쳐본다. 그나마 계단 입구 쪽 콘센트 중 하나가 비어있다. 박 씨는 이마저 뺏길까, 종종걸음으로 콘센트에 다가가 정확하게 구멍에 맞춰 스마트폰 충전기를 꽂는다.
한자릿수를 달리던 배터리 잔량이 어느덧 100%에 가까워지면, 마치 부자가 되는 기분이다.
한숨 돌린 박 씨는 이제 와이파이(WiFi)를 확인한다. 비밀번호가 걸린 카페 와이파이 신호가 이내 잡힌다.
비밀번호는 음료를 주문한 사람들만 와이파이를 쓸 수 있게 영수증에 인쇄돼 제공된다. 하지만 단골인 박 씨는 이미 이 카페가 제공하는 와이파이의 비밀번호를 외운 상태다.
'만땅'인 배터리에 '빵빵'한 와이파이 덕분인지, 박 씨는 커피 주문도 잠시 잊고 평온함을 만끽한다.
◈“콘센트, 와이파이 부족하면 아예 안 들어가요”
요새 웬만한 카페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마치 ‘스마트폰 충전 공장' 같다. 평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점심 시간이 끝난지라 듬성듬성 빈자리가 많지만 유독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이 있다. 바로 콘센트와 가까운 자리다.
전 국민의 60%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높아진 스마트폰 보급률은 사람들의 ‘카페 선택 기준’마저 달라지게 했다.
예전엔 커피 프랜차이즈 브랜드나 분위기, 맛과 가격이 우선적인 선택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콘센트'와 ‘와이파이’가 사실상 카페 최고 인기 메뉴가 된 셈이다.
서울 영등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대학생 이은영(23·여) 씨는 “카페에 들어가기 전 콘센트가 있는지 항상 확인하고 들어간다”고 했다.
이 씨는 “친구들도 콘센트를 쓸 수 있는 카페를 선호하는 편”이라며 “밤늦게 귀가하면 배터리가 빨리 닳으니까 도중에 충전하려고 콘센트를 찾게 된다”고 덧붙였다.
업무상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활용할 일이 많다는 직장인 김정연(33) 씨도 “스마트폰이랑 컴퓨터를 자주 쓰기 때문에 카페를 이용할 때 콘센트 확보 여부가 중요하다”며 “카페에 들어갔다가 콘센트가 없어서 나온 적도 많다”고 말했다.
일부 카페에선 콘센트 자리를 차지하려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서울 목동의 한 카페 아르바이트생은 “콘센트 옆 자리가 가장 인기가 많고 사람들이 먼저 차지하려 한다”고 했다.
대학생 서모(24) 씨는 “신촌 한 카페에서 내가 앉은 자리 쪽엔 충전기가 없길래 옆자리 콘센트에다 꽂았더니, 그쪽에 앉은 사람이 '왜 남의 자리 쪽 콘센트에까지 꽂느냐'며 짜증낸 적도 있다"고 황당해했다.
◈新풍속도 앞에 카페 주인들은 '회전율 고민'도…
사실 카페 입장에선 이런 ‘콘센트파이(콘센트+와이파이)’ 조합을 찾아다니는 최근의 흐름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웬만한 카페는 음료를 주문하는 사람들에게 와이파이를 제공하다 보니, 이제는 서비스 자체를 떠나 품질까지 비교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와이파이가 ‘빵빵하게’ 터지지 않는다면 손님들의 발길은 인근 경쟁 카페로 돌아간다. 신촌 한 유명 커피 체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윤모(20) 씨는 “왜 와이파이가 잘 안 터지냐며 항의를 받은 적도 여러 번 있다”고 했다.
자리 회전율이 느려지는 것도 카페 주인 입장에선 다소 답답한 게 사실이다. 음료 한 잔 시켜놓고 서너 시간씩 자리를 차지하는 손님이 늘다 보니 자리 회전이 원활치 않다는 것이다.
한 카페 전문점 사장은 “한 번 오면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충전하고 있으니 자리 회전율이 느려져서 고민”이라며 답답한 속내를 드러냈다.
2013-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