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이 '특정 후보 밀어주기' 의혹에 휩싸인 성악과 교수 채용을 연기해놓고도 "절차에 문제가 없다"며 반박하고 나섰다.
이에 전국 다른 대학의 내로라 하는 교수와 원로 150여 명이 다시 문제삼고 나서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석사 없는데 바로 박사 학위 인정은 어불성설"
서울대 음대 측은 성악과 교수 공채 과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자, 최근 "절차 전반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요지로 반박자료를 내는 등 공식 대응에 나섰다.
전상직 음대 부학장은 "미국의 '아티스트 디플로마'는 박사 학위에 상응한다고 규정에 명시돼있다"고 논란을 일축했다.
"석사학위 또는 디플로마 소지자로서 공고일로부터 7년 이내 연구실적이 1000점 이상인 자는 박사경력을 인정하도록 돼있다"는 것.
하지만 서울대의 이런 움직임이 알려지자, 국내 정상급 원로와 대학 교수 등 150여 명은 즉각 재반박에 나섰다.
서울대 학칙에 명시된 박사 학위 '아티스트 디플로마'와, 석사학위에 해당하는 '디플로마'는 단독 후보 A씨가 제출한 아티스트 디플로마와는 명백히 다르다는 것이다.
보통 박사학위에 해당하는 '아티스트 디플로마'가 되려면 석사학위 또는 석사에 준하는 '디플로마' 학위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A씨가 제출한 아티스트 디플로마는 "석사학위를 수여하지 않는다"고 공언하고 있는 미국 아카데미에서 발급받은 것이어서, 이들 요건에 충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위 수여하지 않는 곳에서 준 '무늬만 디플로마'
실제 그동안 국내 대학들은 전임교수 및 강사를 공개 채용할 때 응시자격요건을 '석사 혹은 디플로마 소지자'라고 명시해왔다.
유럽의 경우 이탈리아·프랑스의 국립음악원(Conservatorio), 또 독일·오스트리아의 국립음대(hochschule) 디플로마가 이에 해당한다.
미국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학위를 수여하는 정규학교가 발행한 디플로마나 아티스트 디플로마일 경우에 한해 인정해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학위를 제외한 아카데미나 연구소, 학원 등 사설교육시설에서 발급한 '디플로마'나 '아티스트 디플로마' 수료증은 국내 대학에서는 석사 또는 박사 상응 학위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게 음악학계의 중론이다.
학위를 수여하지 않은 곳에서 받은 '디플로마'와 '아티스트 디플로마'는 이름만 같을 뿐, 학위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표 바리톤' 최현수 교수 "한예종에 지원했다면 서류 통과 못했을 것"
국내 대표적인 바리톤 성악가이기도 한 최현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이번에 논란이 된 건 특채가 아니라 공채"라며 "공채 당시 명시한 자격 사항이나 구비서류에 준해서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채인만큼 서류 요건을 충족하는 게 중요하며, 석사학위 이상일 경우를 전제로 한다"는 것.
최 교수는 "A 씨가 한국에서 학사를 나왔지만 대학원은 나오지 않았고 외국에서도 대학원을 나오지 않았다"며 "세상에 그 어떤 학위가 대학원도 나오지 않고 박사로 바로 넘어가는 경우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서울대의 이번 공채 절차는 적법하지 않다"며 만약 A 씨가 한예종에 지원했다면 서류에서 통과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대학 성악과 현직인 B 교수도 "대학교수를 뽑을 때 노래만 잘한다고 교수를 뽑는 게 아니다"라며 "자타가 인정하는 교수의 자격이란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우리 학교에서는 학위를 수여하는 곳이 아닌 아카데미의 '아티스트 디플로마'를 학위로 인정한 적이 없다"며 "이 경우 1차 서류심사에서 탈락하게 된다"고 했다.
성악계 한 원로인 C 교수도 "석사와 박사 학위는 논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따기 힘든 것"이라며 "이름에 디플로마가 붙었다고 다같은 디플로마로 보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서울대학교는 전문 가수나 연주자를 양성하는 곳이 아니라 대학교"라며 "대학은 성악뿐 아니라 음악사(史) 등 모든 걸 공부하는 곳이므로 석사 학위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3배수 후보 룰' 어긴 건 "교육부도 감사 받을 일"
음악계 원로와 교수들은 또 학위뿐 아니라, 절차상 하자 의혹도 문제삼고 있다.
서울대 교수공채 심사규정에는 1단계에서 임용 예정 인원이 1명인 경우 3배수의 '면접 심사 대상자'를 선발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서울대 음대가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2단계 면접 심사에 단독 후보를 올린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예종 최현수 교수는 "3배수로 올려야 하는 것은 국립대뿐 아니라 사립대에도 적용되는 룰"이라며 "서울대가 그걸 어기고 공채 형식을 빌어 특채를 진행하고 있기에 의혹을 사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국립대 기준을 어긴 것이어서 교무처도 감사를 받아야 하는 등 문제가 불거질 소지가 크다"며 "만약 대학본부에서 이대로 승인한다면 교육부 역시 감사를 받아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성악과 현직교수 C교수도 서울대 측이 3배수 임용 규칙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우리 학교의 경우 내가 임용되고 난 이후 교수 공채를 했을 때 3배수가 아닌 사람이 올라간 적이 없었고 3배수를 지켜서 올렸다"고 했다.
다른 대학 교수와 원로들이 이처럼 강력 반발하고 나선 것은, 서울대의 이번 임용이 강행될 경우 국내 음악학계 전체가 대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다른 대학 성악과 현직인 D교수는 "저건 아닌데, 이건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만약 이번 임용이 그대로 진행된다면 너도 나도 박사가 되어 성악계 전체에 대혼란이 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현수 교수 역시 "판 자체가 잘못 짜인 것"이라며 "서울대는 이번 공채 과정의 문제점을 인식해서 제대로 된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2013-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