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만 닷새째…발인 기약도 없는 영혼들

 

 

19일 오전 11시 35분. 서울 노량진 상수도 공사장 수몰사고 희생자들의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고대 구로병원에 새누리당 서울시의회 의원 8명이 찾아왔다.

분향한 뒤 상주들을 위로할 때만 해도, 유족들이 있는 빈소에 들어갈 때만 해도, 의원들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조차 못한 듯했다.

"시의회에서는 대체 뭐하러 왔어요? 뭘 해준 게 있다고 여기를 와요!"

분노가 서린 유족들의 날카로운 지적에 시의원들은 "어제도 현장에 두 번씩, 세 번씩 가며 저희들도 다 하고 있다. 좀 기다려달라. 어쩔 수 없다"며 유족들을 달래려 했다.

"xx 시장이고 뭐고 죽여버릴거야! 가지고 가 이 xxx들아 이런 걸 왜 보내!"

빈소 앞 로비에 있던 화환이 분향실 바닥에 나뒹굴었다. 꾹꾹 참아오던 유족들은 터져나오는 분을 참지 못해 앞다퉈 화환을 집어던지고 걷어찼다.

만신창이가 된 분향실에서 화환 위에 엎드린 고(故) 박명춘(49) 씨의 아내 이춘월(49) 씨는 화환을 끌어안고 땅을 치며 울부짖었다.

"내 신랑 죽이고도 이렇게 멀쩡한가! 박근혜 오라고 해!"

꽉 쥔 주먹 위에 덮인 검은 상복이 부르르 떨렸다. 지친 눈가에는 눈물조차 흐르지 않았다.

의원들이 뒤늦게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우리 마음을 알긴 뭘 안다는 거냐"는 면박만 받고는 굳은 표정으로 서둘러 분향실을 빠져나갔다.

예고된 충돌이었다. 이날 오전 분향소에서는 이미 "누구든 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일부 유족들을 말리는 소동이 몇 차례 벌어졌다.

전날인 18일부터 숱한 조문객이 합동분향소를 찾아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유족들도 비교적 침착하게 조문객을 맞이하며 책임있는 해결을 거듭 부탁했다.

하지만 정작 모두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할 뿐, 정작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 첫 단추는 빈소에 나뒹굴었던 화환을 보낸 박원순 서울시장이었다.

박 시장은 전날 분향소에서 유족들과 악수하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보상문제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건설업체와 유족들의 문제"라며 딱 잘라 선을 그었다.

부쩍 '갑을'(甲乙)을 강조하고 있는 민주당의 김한길 대표도 같은날 빈소를 찾아 "상심이 크겠지만 용기 잃지 마시라.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반복할 뿐이었다.

심지어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상주를 만나 조문만 했을 뿐, 유족들이 모여있는 빈소에는 아예 들르지도 않았다.

이 과정에서 유족들의 마음이 썩을 대로 썩어들어갔음은 물론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분향소를 찾아 사진 세례를 받고 눈도장은 남겼지만, 정작 유족들의 협상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상수도 공사에서 최대지분을 갖고 있던 천호건설 운영진은 자취를 감췄다. 천호건설은 전기요금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부도 상태였던 부실업체인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일부 유족은 "이런 부실업체를 선정해 일을 맡겼다면 서울시도 책임을 져야 하는데 건설업체와 협상하라며 발을 빼려 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또다른 시공업체인 중흥건설 사장은 빈소를 찾지도 않았다. 중흥건설은 사고현장에서 사망자 1인당 장례비로 '단돈' 500만 원을 제시했다. 전날 저녁 9시 30분쯤 열린 협상에서는 오히려 자신들이 억울하다며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이러는 사이 사고현장에서 처음 발견된 조호용 씨의 시신과 유족들은 벌써 닷새째 발인 날짜가 잡히기만 기다리고 있다.

작업반장 고(故) 임경섭 씨의 매형인 이성구(56) 씨는 "그새 시신이 많이 부패했다고 들었다"며 "해결이 돼야 장례를 치르는데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다"며 답답해했다.

유족들은 보상 문제를 둘러싼 건설업체 측과의 협상도 막막하기만 하다.

한 유족은 "건설업체는 수십 년 동안 협상을 맡아온 베테랑을 보내는데 우리는 이런 일을 평생 몇 번이나 당해봤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런데도 서울시가 '너희끼리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나오는 건 포기하란 얘기나 마찬가지란 것이다.

이날 유가족들이 시의원들에게 쌓인 분노를 털어낸 직후, 서울시 측은 유족들과 마라톤 협상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장례식은 상수도사업본부장 주관으로 진행해 일체 비용을 서울시가 부담하고, 시공사와의 보상협의 과정에도 서울시가 '중재 자격'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하지만 유족들이 받은 상처가 아물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더 큰 문제는 보상 협의와 사고 원인 규명까지 많은 분노와 상처의 시간이 유족들 앞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201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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