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이 요즘 시끄럽다. 주민들은 시청, 강남구청과 '대치' 중이다. 심지어 주민들끼리도 분열되는 모습이다.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갈등의 원인은 빗물펌프장이다. 대치사거리가 상습 침수구역으로 선정되자 서울시와 강남구에서는 빗물펌프장 건설을 추진했다.
지난 2011년 7월에는 대치동의 한 상가 건물이 침수되면서 지하실에 있던 환경미화원이 익사하는 사고까지 발생하자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빗물펌프장 설치에 동의했다.
문제는 장소였다. 올해 4월 빗물펌프장이 대치초등학교 앞에 들어선다는 통보에 대치초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안전 문제’를 들고 일어섰다.
빗물펌프장이 설치되는 곳은 대치초 건너편 양재천변. 이곳에 빗물펌프장이 들어서려면 대치사거리부터 양재천변까지 파이프관을 이어야 한다.
이 공사가 진행되면 대치초 정문 앞부터 대치초 삼거리는 파헤쳐질 수밖에 없다. 공사 기간 동안 학교 주변이 온통 공사장이 되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학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들 안전이 가장 큰 걱정이다. 지난 4월 11일 저녁 서울 강북구 성중동에서 학원을 갔다오던 남매가 8m 깊이의 빗물펌프장에 빠져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사고도 학부모들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학부모 이모(50, 여) 씨는 “보다시피 지금도 학교 앞 도로가 좁은 편인데 이 곳에 공사가 진행되면 아이들은 도대체 어디로 다녀야 하느냐”면서 “더구나 어린 아이들이 뛰어다니면서 장난도 치고 호기심도 많은데 사고라도 발생하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며 우려를 나타냈다.
◈ 민원이 적어 후보지 선정? 서울시와 강남구의 엇박자 행정
서울시와 강남구의 갈팡질팡한 행정도 학부모들의 분노를 사는 데 한몫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빗물펌프장 후보지는 타워팰리스 인근 개포동 근린공원과 영동 5교, 그리고 쌍용아파트 인근 SETEC 부지였다.
그런데 지난 4월 강남구가 주민설명회에서 "대치초 앞이 가장 유력한 후보지"라면서 "사실상 결정해놓고 통보했다"는 것이 학부모들의 주장이다.
학부모 임모(41, 여) 씨는 "타워팰리스 등 다른 후보지 주민들의 반발이 극심하자 민원 발생이 적은 만만한 초등학교 앞이 떠밀려서 선정됐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서울시가 용역을 의뢰한 S사 보고서에 따르면 먼저 후보지로 거론된 SETEC 부지와 개포근린공원에 대해서는 "주변 주민의 극심한 민원 발생"이라고 적혀 있지만 대치초는 "학교 앞이어서 상대적으로 민원이 적다"고 적혀있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 1년여 동안 검토한 끝에 다른 후보지보다 대치초 앞이 공사비 절감이나 침수 방지 효과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며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서너번 주민 설명회를 거친 뒤에 결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학부모들이 안전사고를 걱정하는 건 당연하다"면서도 "공사과정 중에 생길 지도 모르는 사고 때문에 공사를 하지 말라고 주장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구에 대한 불신, 주민 간의 갈등도 깊어져…갈수록 멀어지는 침수 방지
빗물펌프장 설치 장소 논란이 지속되자 강남구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도 점점 깊어지고 있다.
학부모 최모(43) 씨는 강남구청장이 "학부모들의 항의는 '님비'라면서 아이들이 사고가 나면 본인이 옷을 벗겠다, 대치동 엄마들의 수준이 낮다는 등 막말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대치동 주민들끼리 갈등도 심각했다. 실제로 미도아파트 인근 주민들은 “장마철이 또 다가왔는데 설치하기로 한 대치초 앞에 빗물펌프장 공사를 빨리 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강남구청 측은 대치초 통학권 주민과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협의체를 만들고 새로운 용역을 발주해 사업지의 타당성을 검증할 예정이다.
서울시와 구청 관계자들은 “벌써 여름이 됐는데도 반대에 부딪혀 답답하다”며 “여름에 또 침수가 발생하면 결국 주민 피해로 돌아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2013-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