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먹으면 죽는데…'알레르기 경고' 없는 나라

 

28개월 된 아기 수진(가명·여)이의 엄마 강모(39) 씨는 최근 외식을 끊었다. 수진이가 가진 알레르기 때문이다.

우유와 계란 흰자에 알레르기가 있는 수진이는 해당 성분이 조금만 들어있는 음식에도 곧바로 반응한다.

지난해 겨울 경기도의 한 키즈 카페를 찾은 강 씨는 으레 그래왔듯 메뉴에서 우유나 계란 흰자가 들어가지 않았을 법한 '어린이용 볶음밥'을 골랐다.

하지만 볶음밥을 먹은 수진이의 피부가 바로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수진이는 이내 가려움을 못 참고 온 몸을 벅벅 긁어댔다.

“아차 싶었죠. 메뉴 이름이나 육안으로 봤을 때 우유나 계란이 들어있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마 볶음밥을 만드는 과정에서 계란이 살짝 섞였나 봐요”.

다른 곳도 아닌 키즈 카페여서 지나치게 신뢰했던 걸까. 강 씨는 '엄마'로서 더 꼼꼼히 묻고 따져보지 못한 자신을 원망해야만 했다.

수진이의 경우처럼 식당이나 커피숍, 학교 급식 등에서 식음료를 잘못 먹고 탈나는 알레르기 환자들이 적지 않다.

최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우유와 계란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에게 유명 커피전문점의 과일 음료를 사먹였는데 반응이 나타나 응급실까지 갔다”는 경험담도 올라왔다.

댓글에는 “공장에서의 재료 제조 공정에서부터 우유 성분이 섞일 수 있다”거나 “조리 도구나 과정에서 살짝 묻었을 염려도 있다”는 등의 지적이 잇따랐다.

차라리 이런 경험담은 '애교' 수준이다. 알레르기 환자 가운데 정도가 심한 이들은 극소량의 성분에만 노출돼도 호흡 곤란 등 사망에까지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4월에는 인천 한 초등학교에서 우유 알레르기가 있는 한 남학생이 우유를 탄 카레를 급식으로 먹었다가 뇌사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현행법상 일반 식당이나 학교 등 직접 음식을 조리해서 제공하는 곳에서는 알레르기 유발 성분이 들었는지 따로 표시하지 않게 돼있다.

식품위생법 9조 '식품 등의 표시 기준'에 따르면, 공장 가공을 거쳐 포장돼 나오는 가공식품에만 알레르기 유발 성분을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돼있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해당 법규는 한국인에게 가장 흔한 13가지 알레르기를 명시해놓고 이를 유발할 제품엔 성분 표시를 하라고 돼있다"며 "다만 이는 가공식품에만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일반 식당은 해당 법령의 관리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환경위해성예방협회에 따르면 알레르기 사례의 70% 이상이 비포장 식품을 먹고 발생한다.

가공식품처럼 포장된 제품에만 알레르기 유발 성분을 표시하도록 한 것은 유명무실하다는 얘기다.

결국 식당이나 학교 등이 자발적으로 메뉴에 경고 문구를 삽입하거나 주의 표시를 해야 하지만, 이를 자체 시행하는 곳은 사실상 없는 형편이다.

심지어 성분 표시가 의무화된 가공식품들도 깨알 같은 글씨로 어려운 성분과 원재료가 적혀있을 뿐, 일반 소비자들이 알레르기 유발 여부를 확인하긴 쉽지 않다.

강 씨는 “다른 건 몰라도 대중적으로 파는 공산품은 제조업체나 유통업체 차원에서 크고 잘 보이게 ‘해당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먹지 말 것’ 등의 경고 문구를 넣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한국인들에게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알레르기는 계란과 우유, 땅콩 등 유발 원인이 13가지나 된다.

하지만 여전히 성분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음식들 앞에서 자칫 숨질 수도 있는 위험에 많은 이들이 고스란히 노출돼있는 셈이다.

 

 

2013-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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