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호처 '삐그덕', 대통령 경호 '비상'



이명박 대통령의 신변 안전을 총지휘하는 경호처가 연일 다른 청와대 직원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임기 초반부터 주업무인 'VIP 경호'에 구멍이 뚫리는 사례가 눈에 띄는데다, '나홀로 조직 챙기기'에 급급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기 때문.

◆'민생'에서 '공천' 만난 李대통령=주말이던 지난 8일, 이명박 대통령은 서민 물가 등 민생 현장을 점검하러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와 자양동 재래시장을 잇따라 방문했다. 류우익 대통령실장과 김중수 경제수석 등이 동행했고, 김인종 경호처장도 여느 때처럼 '그림자 수행'을 맡았다.

대통령을 보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운집한 것은 물론. 특히 이날 자양동 시장에서는 한나라당 공천 탈락에 반발하는 일부 예비후보측 지지자들도 몰려와 '북새통'을 이뤘다. 해당 후보의 사무실이 인근에 자리잡고 있던 탓이다.

경호팀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느라 분주한 분위기였지만, 잠시뒤 군중을 뚫고 나와 이 대통령과 인사를 나눈 한 중년 여성의 첫마디는 주변 참모들을 '경악'하게 했다.

"공천이 부당하게 진행되고 있어요". 다름아닌 탈락 예비후보의 부인이 직접 대통령에게 불만을 토로한 것. "공천은 당의 몫"이라며 거리를 두고 있는 청와대로서는 민생 행보중 뜻하지 않은 '봉변'을 당한 셈이 됐다.

원래 대통령의 모든 외부 행사에는 근접 가능한 인원도 최소로 제한된다. 청와대출입기자단이 두세 명의 '풀(pool) 취재단'을 구성, 취재 내용을 공유하는 것도 이같은 취지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이날 이명박 대통령의 '근접 공간'에는 '풀 기자'가 아닌, 경제부처를 출입하는 모 경제지 기자도 '밀착'했다. 경호처가 기본 사항인 '풀 기자' 여부도 체크하지 않은 채 "기자인데요" 한마디에 근접 공간을 활짝 열어젖힌 것이다.

◆靑직원들 "유령의 섬이냐" 불만=청와대 내부에서는 "본업보다 부업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며 경호처에 대해 못마땅해 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대통령비서실 한 관계자는 "VIP 참석 행사인데도 경호처 인사 의전 문제를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기 일쑤"라며 "어떤 때는 경호처 전속 사진사들이 들어와 플래시를 터뜨리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관내 비서동인 여민관에 근무하는 한 직원도 "입구에 설치된 홍보 전광판에는 대통령보다 경호처장 얼굴이 더 클로즈업돼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꼬집었다.

'유령의 섬'이라는 새 별명도 입방아에 오르는 '단골 메뉴'다. 다른 부서에서 업무 협조를 구하려 해도, 경호처는 연락처마저 쉽게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 실제 청와대 전 직원에게 배포된 '내부 연락망'에도 경호처는 빠져있다.

대변인실 한 관계자는 "우리도 경호처 연락처를 전혀 모른다"며 "청와대 대표 전화를 걸어 돌려달라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총무비서관실 관계자 역시 "경호처에 대해 전혀 파악된 게 없어 관련 업무에서 애를 먹고 있다"며 "화학적 통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호처 "오해 있을 뿐 경호에 문제 없어"=이같은 청와대 안팎의 지적에 대해 경호처는 "오해가 있다"는 입장이다. 업무 특성상 다소간의 독립성이 불가피한 건 사실이나, 아직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생긴 '초반 조정 과정'이라는 것이다.

경호처 한 관계자는 "업무 협조가 필요할 때는 내선 안내전화를 통해 언제든지 연락이 가능하다"며 "공보과에서 담당 계원을 판단해 곧바로 연결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호처는 또 '재래시장 경호 건'에 대해 "통제 상황이 아니라 '시장'이라는 개방된 공간이었기 때문에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한 것"이라며 "당시 경호에 틈이 있던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공천 탈락 관계자 접근' 문제에 대해서도 "해당 여성은 초기부터 '경호 위해요소'로 판단해 정보 파악이 이뤄졌다"며 "인사만 하겠다는데 억지로 격리할 경우 '과잉 경호' 논란 소지가 있어, VIP 수행팀과도 협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풀 기자' 이외의 취재 접근 허용에 대해서는 "개방 공간 상황이기 때문에 일반 시민이든, 기자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대표적 '정치인 테러'로 꼽히는 박근혜 전 대표 피습 사건만 봐도, 누구나 접근 가능한 개방 공간이 '경호 최대의 적'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경호처장 사진 올린 건 맞지만…"=경호처는 또 사진 촬영 등 의전 문제에 대해 "공보과에 자체 사진 촬영 인력이 있는 건 맞다"며 "다만 사진의 용도가 다르기 때문에 포커스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VIP 사진은 청와대 부속실이나 보도지원팀에서 전담해 촬영하지만, 경호처는 행사 경호 상황 등 '채증'(採證) 차원에서 따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호처 관계자는 홍보 전광판 문제에 대해서는 "북악 안내소 전광판은 우리가 잠시 관리하고 있다"며 "(비서실쪽에서) 아직 세팅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홍보 대상이 바뀌었다'는 내부 지적에 대해선 "전광판에 경호처장 사진 두 장이 실렸던 건 맞다"며 "경호처장이 연무관앞 전광판에서 이를 발견하고 직접 지시해 이틀만에 내렸다"고 해명했다.

◆'유연함'과 '철벽' 사이의 딜레마=사실 '차지철 박종규 장세동' 같은 이름에서 보듯, '경호실'이 곧 권력의 상징이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새 정부 들어 대통령실장 '휘하'로 조직과 기능이 축소되면서, 바야흐로 '경호처'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특히 '이명박 청와대'의 인력 및 예산 축소 방침은 경호처로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나 다름없다. 구성원도 최소 지난 정권 이전부터 오랜 기간 근무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아무래도 '과거'와의 비교가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

이명박 대통령은 "경호 때문에 일을 못해서는 안 된다"며 '경호'보다는 '일'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좀더 국민이 보기에 '친근감 있는 경호'를 해달라는 것.

김인종 경호처장 역시 "경호처는 말이 필요 없다"며 '물 흐르듯 조용한' 경호를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역대 어느 VIP보다 '동선(動線) 이탈'이 잦은 이명박 대통령이기에, 경호처의 고심은 깊어만가고 있다.

새 VIP가 주문하는 '친근한 경호'와 본연의 임무인 '철벽 경호' 사이에는 분명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08-03-11 오후 7:50:04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