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아웃' 위기에도 민간시설은 '서늘'

 

 

평년보다 높은 기온에 원전 3기 가동 중지까지 겹치면서 최악의 전력난이 예고되는 올 여름.

이에 따라 정부와 공공기관은 초비상 절전 모드에 돌입했지만, 민간 시설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이른바 '민관 온도차'다.

지난 5일 찾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외국계 기업 사무실. 90여 명이 일하는 이곳은 근무 시간 내내 에어컨을 풀가동, 햇볕이 쨍쨍한 오후 2시에도 24도를 가리켰다.

낮 최고기온이 30℃까지 올라간 이날 서울 시내 곳곳에선 냉방기기를 가동하고도 문을 활짝 열어놓은 소규모 점포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양천구 목동의 한 휴대전화 대리점은 유리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었다. 에어컨의 설정 온도는 23도에 맞춰져 있었다.

 

바로 맞은편에 자리잡은 화장품 가게와 신발 가게도 마찬가지. 문이 활짝 열려도 실내는 시원하다 못해 서늘하기까지 했다.

가게 천장엔 설정 온도가 22도로 맞춰진 총 8개의 에어컨이 찬바람을 씽씽 내고 있었다. 신발을 고르던 20대 여성 한 명이 "너무 춥다"고 말하자, 점원은 "날이 워낙 더워서…"라며 말을 흐렸다.

 

대형 쇼핑몰도 정부의 절전 분위기와 거리가 멀긴 마찬가지였다. 뜨거운 햇빛을 피해 들어선 서울 영등포구의 한 대형 쇼핑몰은 '딴 세상'처럼 시원했다.

시설관리팀 관계자는 "보통 내부 온도를 24도 정도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서울 시내 또 다른 대형백화점의 시설관리팀 관계자도 "현재 매장 온도가 24.5도"라며 "정부 권장온도는 26도이지만 저희가 1도 더 낮춰드리는 것"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반면 같은 시각 찾은 한 공공기관 사무실은 에어컨 가동 없이 27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서울시 중구에 있는 한 공사에서 근무하는 박모(34·여) 씨는 "공공기관이라고 에어컨도 못 켜고, 어떨 때는 사무실이 너무 더워 답답할 정도"라며 "벌써 이렇게 더운데 한여름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여름철 전력수급 전망 및 대책'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28℃ 이상, 계약전력 100kW이상 대형건물은 26℃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특히 전력 사용량이 절정에 오를 7월과 8월에는 문을 연 채 냉방기기를 틀고 영업하는 점포도 일제히 단속할 예정이다.

 

하지만 하루에도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시민들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서울시 강서구에 사는 직장인 유재선(24· 여) 씨는 "일반 가게들은 추울 정도로 에어컨을 트는 곳이 대부분"이라며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계도기간'인 6월이 지나면 7월과 8월엔 본격 단속을 벌이겠다는 입장이지만, 실제 단속에는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한 관계자는 "(단속을 나가면) 당장 내가 장사를 하는데 내 가게 더워서 사람들이 안 온다고 한다"며 "매출이 30-40% 떨어지니 차라리 과태료를 내고 만다는 식"이라고 했다.

민간 부문의 자발적 동참 없이는 '민관 온도차' 현상과 에너지 낭비 행태가 올 여름 내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절약정책과 이상훈 과장은 "이번 에너지 사용제한 대상엔 100kW 미만 민간 시설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규제 대상이 아니더라도 절전 동참 차원에서 많이 참여해달라”고 당부했다.

 

2013-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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