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갑을(甲乙) 논란'의 도화선이 됐던 롯데백화점 입점업체 여직원 투신 사건이 '단순 자살'로 내사 종결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유족은 물론 백화점업계 전현직 관계자들도 '매출 압박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해온 만큼, 경찰 수사 결과를 놓고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 4월 21일 밤 10시,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롯데백화점 청량리점. 7층 베란다에서 입점업체 매니저 김모(47·여) 씨가 몸을 던져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김 씨의 자살 원인으로 백화점 측의 혹독한 매출 압박과 가매출 관행이 꼽히면서, 유통업계에 만연한 갑의 횡포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다. 이후 우리 사회 곳곳에서 휘몰아친 '갑을 논란'의 단초가 됐음은 물론이다.
졸지에 엄마를, 아내를 잃은 유족들도 경찰 수사 결과만 기다려왔다. 한 유족은 "백화점의 매출 압박에 의한 사건으로 상당 부분 인정된다는 얘기를 경찰로부터 들었다"며 "결과가 나오면 전화를 준다고 해서 기다렸지만 연락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사건을 맡은 경찰은 해당 사건을 일찌감치 내사 종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타살이 아닌 자살이므로, 조사할 게 없다는 것이다.
경찰 한 관계자는 "우리는 자살인지 타살인지 여부만 확인할 뿐"이라며 "자살이 명확하므로 입건 자체가 되지 않고 내사 종결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백화점측의 매출 압박 여부에 대해서도"그저 실적을 독려한 수준일 뿐"이라고 못박았다. 고인과 같은 파트에서 일하던 30여 명 가운데 조사에 응한 참고인 두 명이 "일상적 업무 독려였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또 당시 쏟아졌던 내부 관계자들의 백화점 횡포에 대한 수많은 증언과 제보 역시 "매장에서 이렇다저렇다 하는 수준의 얘기를 짬뽕한 '카더라 통신' 아니냐"며 모두 '유언비어'로 치부했다.
이러니 백화점 측의 '함구령' 속에 제대로 입을 열지 못했던 내부 직원들은 착잡한 심경만 드러내고 있다.
롯데백화점 청량리점 한 관계자는 "진술하러 간다는 걸 백화점이 뻔히 아는데 그렇게 진술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바로 표적이 될텐데, 단 한 명도 대기업을 상대로 (진실을)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이를 반영하듯, 경찰 관계자도 "백화점이 모르게 하겠다며 진술을 요청해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던 건 사실"이라며 수사상 어려움을 인정했다.
결국 사회적 공분을 샀던 백화점 매니저 사건은 경찰에 의해 '단순 자살'로 마무리됐다. '을'에 대한 '슈퍼 갑'의 압박도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청량리점 한 입점업체 직원은 "사건 이후 백화점 측 관리자들이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였지만, 다시 매출 압박이 강화되기 시작했다"며 "속상해도 몇십 년 관행이니 어쩌겠느냐"고 허탈해했다.
거세게 몰아쳤던 우리 사회 곳곳의 갑을 논쟁. 하지만 당국의 미온적 대응 속에 '을의 눈물'이 마를 날은 요원해 보인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강규혁 위원장은 "사건 초기 쏟아진 다양한 증언들이 갑을 관계 속에서 묻혀갔다"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강 위원장은 이어 "다양한 방법으로 광범위하게 조사하고, 참고인의 익명성을 보장해야 했다"며 경찰의 소극적 대응을 질타했다.
2013-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