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물류혁명의 주역으로 꼽히는 고속철도 '신칸센'(新幹線). 하지만 그 최대가치는 '실적'보다는 '안전'에 있다.
매년 철로 위에서 60명가량의 인명 사고가 발생해도 안전 대책엔 소홀한, 대한민국의 고속철도 KTX와는 근본부터 다른 셈이다.
일단 지난 1964년 최초 개통 이후 반세기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도 열차 자체 결함에 의한 인명사고가 전무하다.
승강장 안전대책 역시 '무방비'인 코레일의 KTX와는 확연히 다르다. 신칸센을 운영하는 JR규슈가 승강장 시민 보호를 위해 안전 지침과 여러 장치를 마련해놓은 지는 꽤 오래됐다.
먼저 신칸센 고속열차가 지나가는 역에는 허리까지 오는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고 있다. 비용 문제로 스크린도어를 전혀 설치하지 않는 KTX의 코레일과는 '철학' 자체가 다르다.
신칸센 열차가 들어오고 나갈 때는 승객 안전 여부를 확인하는 역무인력이 플랫폼에 항상 배치돼있다. 차문이 안전하게 열렸는지를 확인하는 모니터 요원도 별도로 배치된다.
또 승강장에 위험 상황이 감지되면, 누구든지 눌러서 달려오는 열차에 경고 신호를 줄 수 있는 비상정지 버튼이 50미터 간격으로 설치돼있다. 승강장 바닥에는 점선과 함께 '발밑을 조심하라'는 표시까지 돼있다.
50년 가까이 고속철도를 운행하면서 쌓아온 일본의 이러한 '안전 제일 주의' 전통. 과연 우리가 KTX에 가장 현실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먼저 단기적인 경영 성과, 즉 '실적' 위주의 코레일식 방식이 안전을 도외시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김동원 교수는 "사람을 잘라 경영 상황을 호전시키는 방법은 단기적으로 외면상 재무만 좋아질 뿐, 장기적으로는 회사를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지적했다.
"공기업 회장 임기가 2~3년이다 보니 장기적인 전략보다는 본인 성과에 도움이 되는 인력 구조조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따러서 합리적 구조조정의 기준이 과연 무엇인지 신중한 예측과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김 교수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위원들로 구성된 기구를 운용해 인력 운용을 감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며 "직무분석이나 외국 사례와의 비교 등을 통해 구조조정이 지나친 것은 아닌지 등을 확인하면 효율적 관리가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두세 명뿐인 역사 관리 인원을 현실적으로 늘리거나, 이마저 힘들다면 현 인원으로도 위험 요소를 인지할 수 있는 최적의 시스템을 도입하는 게 절실하다는 얘기다.
같은 맥락에서 자살 시도가 상대적으로 빈번하게 발생했던 역들을 '주요 관리 지점'으로 지정해 관리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현실적으로 모든 KTX 정차역이나 경유역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기 힘들다면, 거점 지역 관리 방식이라도 우선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후약방문'이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CCTV 관제 시스템 역시 최소 인력으로도 효과적인 통제가 가능하도록 '지능형 업그레이드'가 요구된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왕종배 책임연구원은 "감시시스템을 자동화, 지능화해야 사후관리가 아닌 예방체제가 가능하다"며 "정책을 세울 때 안전과 사람의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고 예산을 배정한다면 분명한 답이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CCTV 동영상을 컴퓨터가 분석해 실시간으로 상황을 인식, 관계자들이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진적 시스템 도입이 시급하단 얘기다.
이와 함께 그간 방치돼온 '또다른 피해자'인 KTX 기장들에 대한 처우 개선도 풀어야 할 숙제로 거론된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도 생계를 잃을까 숨기고 살아가야 하는 기장들의 열악한 상황을 더 이상 이대로 놔둬선 안된다는 것이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임상혁 소장은 "피해 기장들이 주로 겪는 우울증, 공황장애는 사고 직후에 잠복해있다 갑자기 정신질환으로 드러난다"며 "초기 치료가 절실한 데도 주변 시선 때문에 꺼리는 경우가 잦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개인 신청이 있어야만 심리 상담이 진행되는 현행 방식 대신, 사고 직후 상담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도입하는 게 현실적이란 것이다.
이를 위해선 현행 철도안전법 11조에 명시된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은 철도운전면허 결격사유에 해당한다'는 규정도 수정이 불가피하다.
권동희 노무사는 "현행 법에서 규정하는 정신질환자라는 범위가 너무 넓어 노사간의 신뢰를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철도를 운전할 수 없는 정신질환의 구체적 범위와 내용만 특정해도, 인사상 불이익에 대한 우려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3-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