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를 '자살 수단'으로 삼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다. 코레일 관리 구간에서 투신 자살하는 사람만 매년 수십 명에 이른다. 하지만 스크린도어도, CCTV도, 경고 표지판도 없다. 그나마 역무 인력은 '경영 효율' 미명 아래 갈수록 줄고 있다. 시민은 불안하다. 기관사도 그 기억에 끔찍하다. CBS노컷뉴스는 자살에 무방비로 노출된 KTX철도의 문제점과 대안을 5회에 걸쳐 짚어본다[편집자주].
지난 24일 오전 서울 노량진역 KTX 승강장 앞. 지난달 7일 여대생 한모(24) 씨가 달리는 KTX에 몸을 던져 자살을 기도한 곳이다.
KTX는 노량진역에서 정차하지 않고 지나치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달렸고, 한 씨는 KTX에 부딪혀 피투성이가 된 채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사고가 난 지 2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노량진역 KTX 선로는 여전히 자살 시도자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현장을 둘러보니 승강장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경비초소는 문이 굳게 잠긴 채 방치돼 있었다. 혹시 있을지 모를 사고를 미리 인지할 수 있도록 도와줄 CCTV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2시간 남짓 지켜본 시간 동안 최대 시속 300km를 자랑하는 KTX가 수 차례 지나갔다. 하지만 승강장의 안전을 돌보는 역무원은 아무도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넘을 수 있는 1m 가량 높이의 철제 난간만 외로이 승강장을 지키고 있었다.
같은 시각 서울 중구 순화동 염천교 위. 이곳도 지난 3월 한 30대 여성이 자살을 시도했던 곳이다. 당시 이 여성은 다리 바깥쪽 철조망을 타넘어 철제 난간에 매달려 있다가, 마침 지나가던 시민의 신고로 다행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석 달 가까이 지난 이곳에도 당시와 달라진 건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CCTV는 물론 '위험하니 선로에 뛰어들지 말라'는 최소한의 경고 표지판조차 전무했다.
이런 무방비 상황은 다른 역들도 마찬가지다. 같은 날 살펴본 영등포역도, 청량리 역도 모두 '사고가 언제 있기라도 했냐'는 듯 후속 조치가 눈에 띄질 않았다.
이러다보니 KTX가 다니는 코레일 관리 구간에서만 매년 수십 건의 투신자살이 발생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승객과 관련한 철도교통 사상 사고는 지난해 73건. 이 가운데 82%를 넘는 60건이 코레일 관리 구간에서 일어났다.
올해 들어서도 4월까지 발생한 23건 가운데 19건이 코레일 관리 구간에서 발생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코레일 측은 오히려 역사 관리 인원을 급격히 줄이고 있다. '실적 개선' 명목에서다.
코레일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승강장에 직원과 공익요원을 포함해 8명 정도의 인력이 배치됐다"며 "하지만 지금은 한 역에 2명밖에 없다"고 했다.
"사장으로 온 사람들마다 '실적 개선'을 한다며 구조조정에만 몰두했다"는 것. 이 관계자는 "이런 인력으로 오가는 열차를 모두 안전하게 관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이런 무방비 상황을 지켜보는 시민들도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인천 부평동에 사는 성경희(44) 씨는 "아이들이 승강장을 뛰어다니며 장난치는 걸 보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며 "예전엔 누가 호루라기를 불며 주의를 주곤 했는데 요즘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실적만을 챙기는 '코레일식 경영'이 결국 시민들의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2013-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