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법 표류속 '미터집' 찾아가보니…

 

"여기서 제일 가까운 미터집으로 가주세요".

서울 도심에서 잡아 탄 택시는 이윽고 도봉구의 한 '미터집'에 멈춰섰다. 16.5㎡(5평) 남짓 작은 창고 같은 공간에는 자동차 수리 공구들이 널려 있었다. 벽에 붙은 선반엔 택시 미터기와 내비게이션이 진열돼 있다.

'미터집'은 택시 차량만 전문으로 다루는 영세한 수리 업체다. 미터기나 결제 장비, 블랙박스와 내비게이션 등을 설치하거나 보수해주는 곳으로 보통 '택시미터'란 간판을 달고 있다.

차량에 이상이 있을 때는 물론, 평소 오가는 길에도 택시 기사들이 들러 삼삼오오 얘기를 나누는 휴게 공간이기도 하다. 구마다 2~3곳, 서울 시내에 대략 서른여 곳 있다는 게 기사들의 얘기다.

다른 기사와 커피를 마시고 있던 택시 기사 김모(62) 씨는 "미터집은 동네 복덕방이나 사랑방 같은 곳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미터집에서는 특히 개인택시면허 거래도 이뤄진다. 단골 기사들이 부탁하면 미터집 주인은 면허를 살 사람과 팔 사람을 연결시켜주고 수수료를 받는 식이다. 수수료는 평균 50만원선이다.

강서구의 한 미터집 주인 채모(66) 씨는 "미터집에선 차량 수리뿐 아니라 개인택시면허 매매 중개도 같이 한다"고 했다. 오랜 세월 택시 기사를 하다 미터집을 열었다는 그는 "자동차매매센터나 미터집이나 면허 시세는 똑같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택시 기사들이 미터집을 선호하는 이유는 오랜 세월 쌓인 신뢰 때문이다. 기사 김 씨는 "이왕이면 다홍치마 아니냐"며 "나도 면허를 팔게 되면 동료 같이 친한 사람을 통해서 거래할 생각"이라고 했다.

내비게이션을 고치러 들렀다는 다른 택시 기사도 "미터집이나 개인택시조합은 앞으로도 계속 얼굴 볼 사이"라며 "이 사람들을 끼고 거래하면 사기를 당하거나 바가지 쓸 염려가 없다"고 했다.

동대문구에 있는 또다른 미터집 주인 김모 씨도 "보통 중고차량과 면허 거래는 자동차매매센터에서 이뤄진다"며 "하지만 수십여 곳 가게 가운데 골라 들어가기도 쉽지 않아 미터집으로 오는 기사들이 많다"고 했다.

현재 개인택시면허 거래 중개는 따로 자격이 없다. 자동차매매센터는 물론, 각 구에 있는 개인택시조합 지부와 미터집 모두에서 면허를 거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면허의 양도와 양수도 일정 요건만 갖추면 가능하다. 개인택시면허를 사려면 법인택시의 경우 3년 무사고 경력, 서울시 운전경력 3년의 조건 등을 갖춰야 한다.

또 면허를 팔려면 만 61세 이상에 양수 받은 지 5년 이상 경과했으면 된다. 서울시 택시과 관계자는 "몇몇 요건만 갖추면 관할 구청에서 인가를 받을 수 있다"며 "누가 중개를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올해초 택시법 파동 이후 상황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업계와 정부 방침이 충돌하면서 면허 거래 자체가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일명 '택시대중교통법'은 지난 1월말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이후 넉 달째 표류하고 있다.

정부는 대신 개인택시면허의 양도·양수를 3회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일명 '택시지원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과잉 공급을 줄이겠다는 이유에서다.

미터집에서 만난 택시 기사 배모 씨는 "정부 법안이 오락가락 수정되다 보니 갈피를 잡기 어렵다"며 "택시 기사들의 입장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것 같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오랫동안 택시 기사들을 지켜봐온 미터집 주인 채 씨도 "개인택시면허는 기사들에겐 재산 1호나 다름없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동안 서울 시내 4만 9천여 명 개인택시 기사들에겐 면허 거래가 '퇴직금'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양도·양수 제한이 강화되면 기사들도, 미터집도 상당한 피해가 불가피해진다는 게 이들 모두의 호소인 셈이다.

 

201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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