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공화국①]부부가 아프다…10%는 '별거중'

 

 

대한민국은 '별거 공화국'이다. 부부 10쌍 가운데 한 쌍이 따로 산다. 매년 별거를 시작하는 부부만도 6만 쌍이다. 아이들도 아프다. 사실상 한부모 가정인데 법적 지원은 없다. 장기화된 별거는 '황혼 이혼'도 불러온다. CBS는 현대판 '부부별곡'(夫婦別曲)의 실태와 대안을 3회에 걸쳐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 영화같은 만남…그리고 2년만의 별거

서른 즈음에. 그녀는 푸켓에서 남편을 만났다. 쪽빛 바다와 붉은 석양을 바라보며 시작된 만남. 마치 영화속의 한 장면 같았다. 연애를 시작했지만 서로 외국 출장이 잦은 탓에 자주 만나진 못했다. 그래서 더 애틋했다. 만난 지 2년만에 결혼했다.

그리고 후회였다. 결코 하지 말아야 했던 결혼이었다. 남편의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다. 제대로 된 직장도 없었다. 시내 한복판에 있다던 으리으리한 한옥집은 장롱이 집을 받치고 있는 수준이었다. 주사가 심한 남편은 그녀를 때리기까지 했다.

결국 사단이 났다. 임신 6개월째 되던 날이었다. 만취해 들어온 남편은 그녀의 배를 걷어찼다. 그녀는 응급실에 실려갔다. 다행히 산모와 아이는 무사했다. 하지만 악몽을 잊는 건 불가능했다.

남편의 외도 사실까지 덮쳤다. 시어머니에게 털어놨다. "남자가 그럴 수도 있으니 참고 살아라"란 대답만 돌아왔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녀는 더 이상 남편의 그림자조차 보고 싶지 않았다.

결혼 2년. 그녀는 갓 두 돌이 지난 아이를 안고 친정으로 떠났다. 그렇게 떨어져 산 지 벌써 8년이 흘렀다. 하지만 그녀와 그는 여전히 법적으로 '부부'다.

◈ 별거 그 후 "이혼은 못 하겠고, 같이 살자니 더 싫고…"

부부들의 별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직장 때문에, 자녀 교육 때문에 따로 떨어져 사는 경우도 많다. 주말 부부가 그렇고 기러기 가족이 그렇다.

하지만 성격 차나 경제 갈등, 결혼 전 조건 속임, 배우자의 불성실한 생활 등으로 별거하는 부부가 더 많다.

"정말 이혼하고 싶어요. 하지만 할 수가 없어요". 별거 8년차 주부 김희영(가명·39) 씨도 그런 경우다. 김 씨는 "같이 살 수는 없고 그렇다고 헤어질 수도 없어서 이렇게 따로 살고 있다"고 했다.

함께 산 2년. 갈등은 켜켜이 쌓였지만 해결된 건 없었다. 그렇다고 별거가 해답을 주지도 못했다. 쌓일 대로 쌓인 갈등은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지금도 김 씨는 하루에도 열두 번 넘게 이혼을 결심한다. 하지만 별거 8년이 되도록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다. "이혼할 거면 아이는 내가 데려가겠다. 양육비는 단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남편의 고집 때문이다.

돈도 돈이지만 더 눈에 밟히는 건 10살 아들이다. 갈수록 아빠의 빈 자리를 느끼는 아이.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김 씨는 끊임없이 망설일 수밖에 없다.

◈ 10년 만에 두 배로 불어난 별거

이렇게 이혼은 하지 못하고 별거 상태를 이어가는 부부는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5년에 한번씩 실시되는 인구주택총조사 자료가 이를 입증한다. 지난 2010년 집계된 '비동거 부부'는 모두 115만 가구다. 5년 전의 83만 5천 가구보다 30만 가구 넘게 늘었다.

지난 2000년엔 63만 3천 가구였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별거 부부도 두 배로 증가한 셈이다. 최근 5년의 추이를 살펴봐도 매년 6만 쌍의 부부가 별거를 시작한다는 얘기다.

지난해 경우 이혼한 부부는 11만 4300여 쌍이다. 단순 비교하자면 이혼에 이르는 부부의 절반 이상은 별거중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배우자가 있지만 함께 살지 않는 가구의 비중은 지난 2000년 5.9%, 2005년 7.5%로 높아졌다. 그리고 2010년엔 두자릿수인 10%를 넘어섰다. 부부 10쌍 가운데 한 쌍이 따로 사는 것이다.

집계 이후인 2011년부터 올해까지의 증가 추이까지 감안한다면, 별거 부부의 비중은 더욱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 "별거는 양육비 안 줘도 돼" 남편들 윽박에 '팔자려니' 받아들여


 

더 나은 삶을 위해 선택한 별거이지만 실제 돌입하면 감당해야 할 현실은 녹록지 않다. 특히 엄마가 아이를 맡은 경우는 당장 생계 문제에 부딪힌다.

김 씨 역시 크게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지난 8년의 별거 기간, 남편으로부터 단 한 푼의 생활비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별거 상태에서 생활비를 안 주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가족 부양의 의무는 나뿐만 아니라 당신한테도 있다". 남편의 막무가내식 주장에 김 씨는 할 말을 잃었다.

아이는 벌써 초등학교 3학년이 됐다. 교육비 부담도, 생활비 부담도 아이 키만큼 쑥쑥 자랐다.

김 씨는 낮엔 유치원에서 양육 교사로, 밤엔 식당 종업원으로, 주말엔 웨딩홀 아르바이트로 뛰며 간신히 입에 풀칠만 하고 있다.

어쩌랴. 스스로 선택한 길인 것을. 김 씨는 오늘도 되뇌이고 되뇌인다.

◈ 정보 부족이 문제…"별거도 양육비 청구할 수 있어"

하지만 김 씨는 '제3의 길'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별거 상태이더라도 아이를 키우는 쪽이라면 얼마든지 상대방에게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조경애 부장은 "부모가 공동으로 책임이 있기 때문에 아이 양육에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며 "특히 장기 별거 상태면 사실상 이혼 상태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다수 별거 여성들은 정보력이 부족한 탓에, 남편 주장에 한마디 대꾸도 못한 채 체념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 큰 문제는 이혼한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대책없이 장기화되기 일쑤란 점이다.

전문가들은 "별거 기간이 길어지다 보면, 떨어져있는 상태에 익숙해지면서 합치려는 의지가 약화되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조경애 부장은 "보통 '이혼 가정'이란 낙인이 싫어 별거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시간이 가도 상대방 단점은 달라지지 않아, 다시 합친다는 것도 큰 부담"이라고 설명했다.

 

 

2013-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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