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장애인들도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지침을 내놨지만, 강제성이 없어 개발자들로부터 철저히 외면 당하면서 '무용지물'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2011년 당시 행정안전부(현 안전행정부)가 고시한 지침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접근성 지침'.
모바일 앱을 만들 때 장애인들도 쉽게 스마트기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내용을 읽어주는 '화면 낭독 기능' 같은 지원 기능을 넣으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이런 기능을 제대로 지원하는 앱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게 당사자인 장애인들의 얘기다.
시각장애인 김영미(34) 씨는 "나처럼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전맹'이 쓸 수 있는 앱은 20개도 채 안 된다"며 "시각 장애인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해서 스마트폰을 샀지만 실제 작동하는 앱이 거의 없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실제로 국내에서 제작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대부분이 정부 지침을 제대로 따르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최근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2012년 웹사이트 등 정보 접근성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모바일앱 접근성 평가 항목에서 중앙행정기관은 73.4점, 지방자치단체 70점, 공사·공단 69점, 민간 64.5점에 불과했다.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 평가진단팀 안동한 팀장은 "지침 기준으로 봤을 때 거의 모든 애플리케이션이 미흡한 실정"이라며 "특히 시각장애인들에게 절실한 은행 뱅킹 프로그램의 경우 여전히 접근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가 생긴 건 정부 지침에 강제성이 전혀 없어, 개발자들이 별로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단 얘기다.
시각장애인 김 씨는 "통신사 고객센터 앱을 통해 요금을 조회하고 싶어도 내용을 읽어주지 않아 확인할 수 없다"며 "개인이나 소규모 업체가 만든 앱은 어떻겠느냐"고 한탄했다.
개인이나 소규모 업체가 대부분인 애플리케이션 개발업계가 아무런 강제사항 없는 고시를 따를 리 만무하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앱 개발자 이경용 씨는 "아이폰의 경우 앱을 올릴 때 애플이 요구하는 기준에 따르지 않으면 등록할 수 없다"며 "정부 모바일 지침도 강제성이 없으면 대부분의 개발자가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이런 정부 지침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개발자도 드문 형편이다. 제대로 홍보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웹접근성평가센터 한승진 팀장은 "모바일 접근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직 부족한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모바일접근성 지침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많다"고 지적했다.
정부 지침이 공공기관에 한정된다는 점도 '반쪽 지침'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상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앱 대다수는 민간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한 팀장은 "실제로 피부에 와 닿는 앱은 음악 스트리밍이나 모바일뱅킹 같은 민간 제작 앱"이라며 "정부 고시는 결국 민간은 안 지켜도 된다는 셈이어서 장애인차별금지법에도 정면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설령 정부 지침에 따라 제작했다 해도, 형식만 갖추고 내용 면에선 수준 미달인 것도 상당수다.
시각 장애인 김씨는 "어떤 앱은 읽어줘도 '메뉴 01', '메뉴 02' 이렇게 읽어준다"며 "뭔가 메뉴이긴 한 것 같은데 뭘 의미하는지는 모를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장애인들은 스마트폰을 갖고 있어도 제대로 활용할 수는 없어 답답함만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 당국은 모든 업체에 지침을 강요할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모바일 접근성 지침'은 선도 차원의 가이드라인일 뿐, 하루에도 수백 개씩 새로 등록되는 앱들을 일일이 감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는 "지침은 권고 차원이지 강제하려고 만든 게 아니다"라며 "지난 4월 의무화가 적용된 '웹 접근성'도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앱 접근성'을 지키라고 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같은 정부 입장에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 안동한 팀장은 "장애인 고객도 고객"이라며 "고객 입장에서 바라봐야 하고,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이 쓸 수 있도록 접근성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이런 바람과 달리 정부 지침이 개발자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면서, 결국 장애인들도 앱 사용에서 외면당하고 마는 악순환만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2013-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