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교처럼?…"우린 아이폰 밖에 못 써요"

 

 

 

시각장애인으로 분한 배우 송혜교가 사용해 인기를 끌었던 일명 '송혜교폰'. 하지만 드라마와 달리, 현실 속에서 스마트폰을 쓰는 시각장애인의 90%는 아이폰을 쓰고 있다.

아이폰을 2년째 쓰고 있는 시각장애인 조현영(33) 씨는 "안드로이드폰을 쓰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평소 음악을 즐겨 듣기에, 파일 형식을 바꾸지 않아도 곧바로 음악 파일을 넣을 수 있는 안드로이드폰의 특징이 매력으로 느껴진다는 것.

전용 충전기가 필요한 아이폰과 달리, 웬만한 충전기를 다 쓸 수 있다는 점도 끌리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선뜻 안드로이폰으로 갈아타긴 쉽지 않았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필수 기능인 '화면 낭독 기능'이 불편해서다.

화면 낭독 기능이란 손가락이 닿는 부분을 포커스로 잡아 그 부분의 내용을 읽어주는 기능이다. 안드로이드폰의 '토크백', 아이폰의 '보이스오버' 기능이 이에 해당한다.

시각장애인들은 '토크백'이 '보이스오버'에 비해 불편하고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포커스 정확도가 아이폰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이다.

조 씨는 "원하는 방향대로 화면상에서 포커스를 맞추는 게 어렵고, 맞춰도 해당 페이지로 원활하게 이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문자 입력 기능도 마찬가지다. 아이폰의 경우 문자키를 누르면 일단 읽어준 뒤 한 번 더 눌러야 입력되지만, 안드로이드폰은 한 번만 눌러도 곧바로 편집창에 입력되기 때문.

조 씨는 "내가 원하는 글자를 바로바로 입력하지 못하고 엉뚱한 것만 입력돼 전혀 쓸 수가 없다"고 불편함을 토로했다. '시각장애인들이 쓰기엔 안드로이드폰이 불편하다'는 데에는 전문가들도 공감하고 있다.

장애인인권포럼 산하 기관인 '웹와치'의 한 관계자는 "안드로이드폰은 해당 링크로 먼저 초점이 인식되는 걸 건너뛴다"며 "바로 접속되니 자동으로 그 기사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고 지적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이용하는 스마트폰 기종이 워낙 다양해, 아이폰만큼의 호환성을 보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이폰 경우 장애인 지원 기능을 놓고 오랜 기간 연구가 이뤄진 반면, 안드로이드폰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얘기다.

웹와치 관계자는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의 최신 버전인 '젤리빈' 이상에서는 토크백 기능이 상당 부분 개선됐다"면서도 "하지만 보이스오버 기능의 절반도 못 따라갔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시각장애인들이 안드로이드를 외면하게 만드는 건 비단 기술적 문제뿐만이 아니다. 허술한 제도 역시 이런 현상에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웹접근성 전문가인 현준호 씨는 "미국에선 장애인들이 불편함 없이 스마트폰을 쓸 수 있도록 제조사가 스마트폰 자체에 관련 기능을 넣도록 강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국내 장애인차별금지법의 경우 '정보 접근에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포괄적 조항만 포함돼있어, 오히려 차별을 조장하고 있단 얘기다.

이러다보니 같은 스마트폰이라도 수출용 제품은 장애인 지원 기능이 안정적인 반면, 내수용은 불안정한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한 휴대폰 제조업체 상품기획팀장은 "FCC(미국 연방통신위원회)나 미국 사회가 훨씬 더 구체적으로 제품 규격을 명시하고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요구한다"며 "아무래도 내수용보다 더 신경 쓰고 지원하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수출할 때 지키는 규정만 국내 모델에 적용해줘도 불편함은 상당 부분 사라질 거라는 게 시각장애인들의 호소다.

조 씨는 "우리도 똑같은 소비자인데 무시당하는 기분마저 든다"며 "이왕이면 우리 나라 제품을 쓰고 싶은데 이건 아예 쓰지 말라는 것 아니냐"고 속상해했다.

결국 기술적 문제에 더해 제도적 미비까지 겹치면서, 스마트 기기에 대한 시각장애인들의 접근성도 열악한 수준일 수밖에 없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지난해 2월 발표한 '장애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시각장애인 가운데 17.1%가 "신체 장애로 스마트폰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반면 같은 대답을 한 지체장애인은 5.8%에 불과했고, 청각·언어장애인들 가운데서도 13.9%에 그쳤다. 다른 장애인들에 비해서도 시각장애인들이 스마트폰 이용에 애먹고 있다는 얘기다.

국민 60%가 스마트 기기를 쓰는 시대가 된 만큼, 시각장애인도 불편함 없이 쓸 수 있도록 제조업체와 정부 당국의 배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애인문화누리 김철환 활동가는 "장애인을 일반 소비자가 아닌 '부가적 서비스 제공자'로만 생각하는 게 문제"라며 "불편사항이 있으면 바로 점검해 개선하는 게 제조사들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2013-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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