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요 기관들이 세종특별자치시로 대거 이전하면서, 청사를 방호하는 청원경찰들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CBS가 지난 6일 단독 보도한 국민권익위원회 상황처럼, 정부 기관 곳곳에 정규직으로 고용된 청원경찰 전원이 해고될 위기에 처한 것.
하지만 청사 이전을 빌미로 정리해고하는 것은 불법 소지가 다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여서, 정부의 이런 방침을 놓고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 "세종시엔 청경 없다…해고는 당연"
정부청사관리소 방호 담당자는 6일 CBS와의 전화 통화에서 "청경 고용 문제는 청경법에 다 정해져 있다"며 "세종청사에는 청경 대신 특수경비만 뽑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시 청사의 방호 업무는 용역을 통해 고용된 특수경비원들만 맡게 되며, 다른 건물에 사무실을 임대한 정부기관장이 직접 고용했던 청경들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는 얘기다.
정부 측은 '세종시 이전이 정리해고 사유가 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청사관리소 관계자는 "기존 청사가 폐쇄되므로 시설 폐쇄 말고는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이런 논리의 근거로 삼는 것은 청원경찰법 10조 5항과 6항이다. 해당 조항은 '청원경찰이 배치된 시설이 폐쇄돼 고용주가 청원경찰을 배치할 필요가 없다고 인정하면 곧바로 해고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청사관리소 관계자는 "법적 자문을 받을 필요도 없는 확실한 문제"라며 "청원경찰들은 해고될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권익위 해명도 사실과 달라…"납작 엎드려도 시원찮을 판에"
정부가 이처럼 정리해고 방침을 확정했는데도, 해당 기관들은 궁색한 변명만 내놓고 있다.
특히 이성보 위원장의 '폭언' 논란이 불거진 권익위는 "청경에게 해고를 통보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에 나섰다.
하지만 CBS 취재 결과 권익위는 이미 청사관리소 측에 청경 해고 여부를 문의했고, 이에 관리소 측은 "너무나 명확한 당연 해고 사유"라고 답변한 것으로 확인됐다.
관리소 관계자는 "권익위의 경우 수십 번 연락이 왔다"며 "방호원을 뽑을 때 우선 고려해달라는 식의 전화도 많이 왔다"고 밝혔다.
권익위는 또 "상관에게 잘 보여서 근무평가를 잘 받아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이마저도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CBS가 입수한 녹취 파일에는 "윗사람 기분 상하게 건드려 버리면 곤란한 상황이 벌어진다"며 "납작 엎드려도 시원찮을 판에 그러면 점점 입지가 좁아진다"는 인사 실무자의 '경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권익위는 파문이 확산되자 "청원경찰의 신분 안정 및 고용 유지 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며 급한 불 끄기에도 나섰다.
◈청경 통계조차 전무…청경들 "고용 불안감 심해"
하지만 정부가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을지, 심지어 그런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정부가 해고 위기에 몰린 청경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있다는 게 대표적 반증이다.
청사관리소 방호 담당자는 "청경 현황은 우리가 알 필요가 없다"며 "우리와 아무 관계 없는 통계를 왜 갖고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또 "세종시 청사엔 청경이 없다"며 "(해고 등은) 협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이러다 보니 해고 위기에 직면한 청경들은 애간장만 타들어 가지만, 조직 내에서 절대적 약자이다 보니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있다.
역시 세종시 이전 대상인 국가보훈처에 근무하는 청경 A 씨는 "당연히 고용 불안을 느낀다"며 "최대한 협조해서 산하기관이라도 가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권익위에 근무하는 청경 B 씨도 지난해 10월 채용될 당시 세종시 이전에 따른 고용 상태 변화 가능성에 대해 전혀 듣지 못했다.
B 씨는 "청사관리소에 확인해보니 '해고될 것'이라고 해, 권익위에 고용 보장 방안을 담은 공문을 요구했다"며 "하지만 돌아온 답은 '집착하지 말라, 납작 엎드려라'였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직장 이사 가면 전부 정리해고감? '해괴한' 정부 논리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정리해고 방침은 위법 소지가 다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섣불리 해고를 결정하기 전에 충분한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단 청사 이전이 과연 '시설 폐쇄'인지가 불분명하다. 단순한 장소 이전일 뿐 기능은 그대로 유지되는 만큼 '폐쇄'로 볼 근거가 희박하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권두섭 변호사는 "시설 폐쇄는 더 이상 해당 시설 기능이 필요가 없어 시설이 사라진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며 "세종시 이전을 시설 폐쇄로 해석해 해고한다면 이는 부당해고"라고 지적했다.
"직접 고용하던 청경을 더 낮은 처우의 간접 고용 특수경비원으로 바꾸려는 수법이 아닌가 의심스럽다"는 얘기다.
실제 판례도 이런 지적을 뒷받침한다. 지난 2004년 강릉지사를 폐쇄한 양양공항의 경우 '시설 폐쇄'를 이유로 청경 일부를 해고했지만, 결국 법원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은 바 있다.
◈'노동법과 청원경찰법 중에 어떤 게 상위냐' 논란도
설령 '시설 폐쇄'가 맞다 하더라도 논란의 소지는 여전히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권영국 변호사는 "청원경찰법보다 근로기준법에서 말하는 정리해고 대상인지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정평 안지훈 변호사도 "청경의 신분이 정확하지 않아 고용형태와 해고사유 등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다"며 "얽혀 있는 청원경찰법과 근로기준법에 대한 법리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해고의 현실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지만, 법은 여전히 너무나 멀리 있다는 얘기다.
2013-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