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을 둘러싼 한나라당 갈등이 그야말로 '손대면 터질 듯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오는 24일 확정될 공천심사위원 명단은 그 '뇌관'으로 이미 심지에 불이 붙었다. 21일 강재섭 대표의 얘기처럼 "공천심사위 구성이 100%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점에서다.
당 주류는 연일 '계보 정치'를 비판하며 이방호 사무총장 중심의 공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무총장이 공심위에 포함될 것이란 얘기도 유력하게 흘러나온다. 최근 '40% 물갈이' 발언으로 박근혜 전 대표측의 사퇴 압박을 받았던 당사자이기도 하다.
반면 갈등의 또다른 축인 박 전 대표측은 '비선(泌線) 공천' 의혹을 제기한 데 이어, 최강 폭발력을 지닌 '분당(分黨) 카드'도 서서히 꺼내들기 시작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박 전 대표 언급에 대한 원론적 설명일 뿐"이라고 선을 긋지만, 그저 '원론'으로 볼 단계는 벌써 지났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원칙'의 朴에 '마지노선'은 없다="마지노선이 어디냐"는 한 측근의 질문에 박 전 대표가 즉각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는 이미 보름전쯤부터 정치권에 회자됐다.
한마디로 제동 풀린 두 기관차가 전속력으로 마주 달리고 있지만, 남은 철로는 이제 별로 없는 형국인 셈이다.
두 기관차의 충돌은 보통 '李朴 갈등'으로 불리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姜朴 갈등'이다. 현행 당헌당규상 대권과 당권이 분리돼있고, 공천은 엄연히 당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당선인이 "비선 공천은 없다"며 "강재섭 대표를 중심으로 당이 공천을 주도해달라"고 힘을 실은 것도, 따지고 보면 '원론'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결국 이번 갈등은 '박(朴)의 원칙' 대 '강(姜)의 법칙'의 대결로 가시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같은 배경에서다.
'원칙'은 박 전 대표에게서 떼낼래야 떼낼 수 없는 두 글자다.
지난 대선의 가장 큰 '정치적 사건'으로 평가되는 박 전 대표의 이른바 '아름다운 승복'도 결국 근본은 '원칙'에서 나왔다.
박 전 대표는 이번 공천 갈등에 대해서도 "원칙을 지켜 공정하고 투명하게, 민주적 절차에 따라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역시 '원칙'이다.
따라서 '원칙'을 중시하는 박 전 대표에겐 당헌당규에 없는 '총선기획단'의 존재나 공천 시기, 일괄 발표 방식 등 모든 것을 그대로 넘길 수 없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朴측 "姜의 법칙, 또다시 적용될 것"= 이런 갈등은 지난해 5월 상황과도 꼭 닮았다. 경선 룰을 놓고 '李-朴' 양 진영이 극한 대치를 벌이고 있던 무렵이다.
박 전 대표는 당시 강재섭 대표가 중재안을 내놨을 때도 "이대로 하면 한나라당은 원칙도 없는 당이 된다"며 즉각 거부하고 불신을 드러낸 바 있다.
당시 박 전 대표측의 불신에서 비롯돼 정치권에 회자된 말이 바로 '강(姜)의 법칙'이다.
강 대표가 정치적 분수령마다 힘있는 '주류(主流)'의 길을 선택해왔으며, 중재안을 통해 명백히 '친이(親李)'의 길로 급선회했다는 것이다.
지난 2006년 7월 전당대회에서 박 전 대표의 막판 지원으로 이재오 의원을 꺾은 강 대표이기에, 박 전 대표측이 느낀 '배신감'은 더했다.
강 대표 스스로도 당시에 자신의 당선을 "박풍(朴風)과 강풍(姜風)이 합쳐진 결과"로 평가할 정도였다.
박 전 대표측은 이번 공천 갈등 국면에서도 "姜의 법칙이 또다시 적용될 것"이라며 노골적인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형식상 지도부가 공천을 주도하겠지만, 강 대표의 성향상 당선인의 의도가 고스란히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姜대표가 '솔로몬' 언급한 까닭은?=강재섭 대표로서는 박 전 대표측의 이같은 시선이 달가울 리 없다.
"아주 공개적으로 공명정대하게 공천 일정을 준비하고 있다"며 당 지도부에 대한 신뢰를 당부하고 나선 건 그나마 점잖은 편이다.
강 대표는 최근 "(공천에) 어느 누구의 부당한 관여나 쓸데없는 간섭이 있어선 안된다"거나 "선입견을 갖고 의심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모욕감을 느낀다"며, 사실상 박 전 대표를 정면 비판하기도 했다.
정치권에 회자된 '姜의 법칙'에 대해선 이미 "항상 주류를 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내 일관성은 당을 항상 지켜온 것"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실제로 당 안팎에서는 "강재섭의 '화합형 리더십'이 있었기에, 10년만의 정권 교체가 가능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대선 주자' 위상을 던지고 '대선 관리자'를 자처한 그가 때로는 어르고 눙치면서, 또 때로는 단호함으로 '냉온탕'을 오가며 결국 훌륭하게 위기 관리를 해냈다는 게 그 요지다.
갈등이 고조되는 시점에서 박 전 대표를 "한나라당의 제일 보배"라고 치켜세운 점이나, 이 당선인을 만나 "(박 전 대표의) 심정을 이해해야 한다"고 당부한 것도 '강재섭 리더십'의 단면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강 대표의 이같은 리더십은 가까운 시일안에 공천심사위 구성 문제를 놓고 박 전 대표의 '원칙의 리더십'과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강 대표가 2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역지사지 자세로 솔로몬의 지혜를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솔로몬의 재판정에 선 두 모성(母性)의 얘기처럼, '원칙'만을 강조하다 '한나라당'을 두 토막 낼 수는 없지 않느냐고 우회적 호소를 한 셈이다. 누구보다 당에 대한 애착이 큰 사람이 박 전 대표 아니냐는 것.
동시에 만약 박 전 대표측이 공천 작업에 반발해 '최악의 시나리오'인 분당을 감행할 경우, 박 전 대표를 '참 나쁜 모성'으로 규정짓겠다는 무언의 압박도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성격이 다른 두 리더십이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향후 정국을 가를 중대 시험대에 동시에 오르게 됐다.
2008-01-21 오후 5:1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