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예고' 신고해도…경찰과 소방서는 '밀땅'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모두들 안녕'.

직장인 김모(53) 씨는 지난 주말 오후 7시 40분쯤 사촌동생의 SNS 메시지를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메시지에 딸린 위치 정보는 'A대교 위에서'라고 적혀있었다.

그동안 밝게만 지내는 줄 알았던 사촌동생의 '자살 암시'임을 직감한 김 씨. 곧바로 생사 확인을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 신호만 계속 울릴 뿐이었다.

이에 김 씨는 112에 전화해 바로 실종 신고했다. 또 A대교 관할 지구대에도 전화를 걸어 "사촌 형인데 한시가 급하니 위치 추적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록 김 씨에겐 아무런 답변이 오지 않았다. 2시간 넘게 지난 오후 9시 50분에야 경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소방서가 지금에야 위치 추적을 해줬다"며 "사촌 동생은 집에 와있고 안전하다"는 요지였다.

◈경찰 "소방서에서 지연", 소방서 "그냥 경찰이 하면 돼"

가슴을 쓸어내리긴 했지만 두 시간여 마음을 졸일 대로 졸인 터. 속사정은 이랬다.

담당 경찰은 CBS와의 전화 통화에서 "실종 신고 접수를 받은 뒤 관할 소방서에 위치 추적을 요청했는데, 소방서측이 거절해 지연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소방서의 입장은 사뭇 다르다. 관할 소방서 관계자는 "경찰도 긴급 상황시엔 이동통신사와의 핫라인을 통해 위치 추적을 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도 "지금은 경찰이 소방서를 거치지 않아도 위치 추적을 요청할 수 있다"며 "경찰이 소방서 핑계를 대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배경은 이렇다. 현행 '위치정보 보호 및 이용에 관한 법률' 15조는 개인 동의 없이 위치 정보를 수집하거나 이용할 수 없게 했다.

다만 소방서와 해양경찰서 같은 긴급구조기관이 구조를 요청할 때는 예외로 명시됐다.

경찰은 이를 근거로 "우리는 긴급구조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112 신고를 받아도 발신자 동의 없이는 위치 추적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복잡한 법규 해석 놓고 옥신각신…가족들만 '발 동동'

하지만 소방서 측은 '개인정보보호법' 18조를 근거로 들고 있다. 이른바 '오원춘 사건' 당시 위치 추적 절차를 놓고 논란이 일면서 지난 3월 개정된 조항이다.

당시 피해자 유족들은 "형사들이 우리보고 119에 가서 피해자 위치를 파악해보라고 했다"며 "그렇게 다급한 상황에서 경찰이 위치 파악조차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항의했었다.

이에 따라 개정된 18조는 △정보 주체가 의사 표시를 할 수 없는 상태이거나 △주소불명 등으로 사전 동의를 받을 수 없는 경우 △급박한 생명·신체·재산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제3자도 개인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게 했다.

이런 경우에 해당하면 경찰이 곧바로 이동통신사에 위치 추적을 요청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하지만 경찰 측은 "보통 납치 같은 위급 상황에만 통신사에 긴급 위치 추적을 요청하고 있다"며 "이럴 경우 나중에 서장 명의로 법원에 영장을 청구해야 한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원한 관계나 채무 관계에 있는 사람이 악용하는 경우도 많아, 실종 신고시엔 거의 소방서에 위치 추적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결국 복잡한 법규 해석을 놓고 경찰과 소방기관이 '갑론을박'하는 사이, 촌각을 다투는 긴급한 상황만 속절없이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가족이나 친척이 실종됐을 경우 가장 신속하게 위치를 추적하려면, 인근 경찰서나 소방서로 직접 달려가 실종 신고를 한 뒤 신분증을 보여줘야 하는 형편이다.

 

 

2013-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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