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 롯데백화점에서 자살하신 그 분의 심정은 누구보다도 제가 더 잘 알아요".
노동절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수도권 한 법원 앞에서 만난 서남현(40·가명) 씨는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지난 2007년부터 서울 시내 한 롯데백화점의 가구매장 매니저로 일하면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노동'했던 서 씨였다.
하지만 4년 동안 실적 압박과 '가매출'의 굴레 안에서 허덕이던 서 씨는 결국 집까지 송두리째 잃고 5억 원가량의 빚만 남았다.
◈ 판매사원으로 시작해 백화점 매니저로 '입성'
서 씨가 처음 백화점 업계에 발을 들인 것은 지난 1995년. 가구업체에 직접 고용된 판매사원으로 취직하면서부터다.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고 사원으로 일하면서 매니저의 눈칫밥을 보며 일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발에 땀나도록 뛴 건 '매니저'라 불리는 판매대행자로 올라서겠다는 목표 하나 때문이었다.
당시 서 씨가 일했던 회사에서 '매니저'는 개인사업자로 등록해 매장을 관리할 수 있었고, 매출의 10%가량을 수수료로 챙길 수 있었다.
그렇게 하나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일한 끝에, 서 씨는 지난 2000년 고대하던 매니저로 입성하게 됐다.
"매니저로 승진했을 때는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줄만 알았죠".
그가 씁쓸한 미소를 표정에 띄운 이유다.
◈ 매출 달성 못 하면 쏟아지는 모욕, "참 무능한 인간이군요"
하지만 현실은 상상과는 '백만 광년' 떨어져 있었다.
매니저가 된 서 씨는 매장 매출을 온전히 혼자 책임져야만 했다. 일한 만큼 가져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정해진 매출을 반드시 맞춰야만 했다.
매출은 언제나 지난해 같은 날보다 더 많아야만 했다. 그러면서 상권 안에 있는 다른 백화점보다 같은 상품을 무조건 싸게 팔아야만 했다.
매장 매출을 감독하는 파트리더는 저승사자처럼 서 씨를 쪼아댔다.
파트리더는 연 단위로 시작해 분기, 월, 일, 심지어는 오전과 오후 단위까지 매출 목표를 정해줬다.
이런 매출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파트리더의 온갖 모욕적 언동이 쏟아졌다.
"당신 이거 밖에 안 됩니까?", "참 무능력한 인간이군요".
서 씨는 이런 모욕 앞에서도 그저 죄인일 수밖에 없었다. 할당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바닥에서 가장 회자되는 '매출이 인격'이란 말은 새삼 꺼낼 필요도 없었다. 파트리더는 옆 매장 매니저에게 아예 대놓고 욕까지 했다.
달마다 돌아오는 세일 기간과 각종 백화점 행사는 서 씨를 더욱 압박했다.
매출이 부진하면 서 씨의 매장이 행사에 참여할 수 없게 되고, 그러면 매출은 더 떨어지는 악순환에 시달릴 게 불 보듯 뻔했다.
"이번에 자살하셨다는 분 심정이 어땠을지 다른 분들은 몰라도 저는 알아요".
◈ 결국 손댈 수밖에 없던 가매출…남은 건 빚만 5억 원
결국 서 씨는 가매출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
가짜로 만들어낸 고객의 이름으로 물건을 사는 척하며 서 씨는 자신의 카드로 결제했다.
처음에는 카드요금을 납부하기 전에 승인을 취소할 수 있었지만, 매일 올라가는 '매출 목표'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가매출을 취소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자신의 돈을 박아넣는 나날이 이어졌다. 특히 서울 시내 한 롯데백화점에 입점한 뒤로는 가매출 규모가 껑충 뛰어올랐다.
다른 백화점에서 일할 때는 한 달 가매출이 100~200만 원 정도였지만, 롯데백화점으로 옮긴 뒤엔 700~800만 원을 결제하는 일이 잦아졌다.
어느새 서 씨 자신의 카드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아내 카드까지 빌려야 했다. 심지어 모회사 영업사원의 카드를 빌려 가매출을 올렸다.
가매출을 통해 매출의 10% 가량을 손에 쥔다 해도, 가매출한 카드 이자로 눈 녹듯 사라졌다.
결국 서 씨는 매니저 12년, 롯데에서의 4년을 '가매출 굴레'에 묶여 견디고 견디다가 결국 지난 2012년 일을 그만뒀다.
신용불량자가 된 서 씨에게 남은 건 카드빚 3억 원을 포함해 은행대출과 사채 등 5억 원을 훌쩍 넘는 빚더미였다.
가매출 굴레에서는 벗어났지만, 수입이 끊겼기에 이자를 갚을 길도 막막했다. 담보로 맡겼던 집까지 압류당해 몸 누일 곳도 사라졌다.
초등학생 아들도 남들 다 보내는 학원 한 곳 보내지 못해,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매니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일 수밖에 없어요. 끝이 보이지 않죠".
◈ "수지가 안 맞아도 항의 한 번 할 수 없어"
"도저히 수지가 맞지 않았지만 항의 한 번 할 수 없었습니다".
백화점 업계 1위임은 물론, 유통업계를 모두 장악한 롯데의 눈 밖에 나면 좁디좁은 업계에 다시 발 불이기 힘든 건 뻔한 일이었다.
아무 것도 몰랐던 22살부터 청춘을 쏟아부으며 했던 일이라 그만두기도 쉽지 않았다.
다른 일을 구하고 싶어도 서 씨가 할 줄 아는 일도, 아는 사람도, 모두 백화점 안에만 있었다.
무엇보다 매니저가 되면서부터 모업체와 맺은 판매대행계약이 발목을 잡았다.
이 계약에 보증보험으로 9000만 원이 설정돼 있기 때문에, 일을 그만둔다면 계약불이행으로 이 돈을 그대로 날려야 하는 구조였다.
빚이 눈덩이처럼 늘어나도 일을 그만둘 수 없었던 것도 그래서다. 빚을 더 보탤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매니저들이 스스로 가매출을 한다고?
서 씨는 결국 지난해 11월 자신이 일했던 가구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 최근 법원에 드나들고 있다.
수억 원이 넘도록 가매출을 하면서 정작 실제 제품은 손에 쥐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서 씨는 "매장 매니저들이라면 누구나 자살한 매니저의 심정을 이해할 것"이라며 "자살까지는 아니더라도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매니저들이 정말 많다"고 분노했다.
그는 '매니저들이 경쟁 때문에 스스로 가매출을 한다'는 롯데백화점 측의 해명에 대해서도 격한 감정을 쏟아냈다.
서 씨는 "누가 자발적으로 돈을 바쳐가면서까지 매출을 올리고 싶겠냐"며 "백화점의 압박이 없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란 건 삼척동자도 안다"고 흥분했다.
빚더미에 눌린 서 씨는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할 줄 아는 게 '그 일'밖에 없다는 그는 이번에는 다른 가구업체의 판매사원으로 겨우 취직에 성공했다.
18년을 돌고 돌아 다시 판매사원이 됐지만 잃은 건 청춘이요, 얻은 것은 만져보지도 못한 빚 5억 원뿐이었다.
2013-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