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만명의 초속 경쟁…'17년차 퀵맨'의 하루

 

 

"요새 퀵기사들이 많이 힘들 거예요. 기본 벌이가 안 되는 사람도 많아요. 기사들이 너무 많거든요".

 

'불금'이던 지난 19일 오전 10시 강남역 10번 출구 앞.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 사이로 미끄러지듯 빠져나오는 오토바이와 함께 소학영(51) 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17년차 퀵서비스 기사. 군복 스타일 재킷에 검은 바지를 입은 소 씨는 언뜻 노동자보다 '라이더'에 가까워보였다.

 

"아침부터 8,000원짜리로 시작하면 계속 8,000원짜리가 걸린다니까요. 3시간 동안 8,000원짜리 두 건 밖에 못했어요".

 

퀵서비스 기사들에게 금요일은 가장 일거리가 많은 '대목' 요일이다. 하지만 이날 실적은 영 신통치 않았다. 아침부터 이곳저곳 부지런히 돌아다녔지만 3시간 동안 번 돈은 1만 6,000원이 전부였다.

 

오전의 부진을 만회하려는 듯, 소 씨는 쉴 새 없이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1만 5,000원 넘는 '월척'을 놓치면 안된다는 불안감이 배어났다.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7시쯤 스마트폰과 무전기를 켜요. 이걸 켜면 오더(주문)가 뜨는데 그걸 보고 캐치(확인)하는 거예요".

 

퀵서비스 단가는 보통 거리에 따라 나뉜다. 서울 시내라도 같은 구일 경우엔 7,000~8,000원, 강남에서 여의도처럼 구가 다른 경우 1만~1만 2,000원, 강남에서 강북은 1만 3,000~1만 5,000원 선이다.

 

시가 바뀌면 단가도 껑충 뛴다. 강남에서 분당이나 일산은 2만 5,000원, 강남에서 파주나 강화는 4만원 받는 식이다.

 

"경쟁도 이런 경쟁이 없어요. 갈수록 정말 치열해요. 요즘은 날이 좋아 아르바이트로 나선 퀵 기사들도 많아졌어요".

 

소 씨가 '퀵맨'으로 입문한 건 34살이던 지난 1997년. IMF사태를 전후한 경제 위기는 소 씨 역시 내버려두지 않았다.

 

공사판을 전전하며 이른바 '노가다'를 하던 소 씨는 서른 살쯤 공장을 하나 차려 어엿한 사업을 시작했다. 카세트에 동봉되는 책자를 만드는 일이었다.

 

"카세트를 만들던 업체가 부도나면서 함께 문을 닫았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지, 규모가 크지 않아서 빚진 것도 별로 없어요".

 

이후 생존의 동반자가 된 친구는 어려서부터 타던 오토바이였다. 지금은 고3 수험생인 큰 딸과 둘째, 셋째의 학원비까지 모두 대주는 기특한 녀석이다.

 

"한 달에 많이 벌면 300만 원이에요. 애들 학원비와 월세 60만 원, 스마트폰 통신비도 25만 원 넘게 나가요. 기름값에 생활비까지 빼고 나면 3만원 저축하기도 빠듯하구요".

 

그래도 빚이 없는 걸 행복이라 여기는 소 씨에게도 요즘 들어 이만저만 근심이 아닌 문제가 있다. 갈수록 늘어나는 경쟁자들이다.

 

"일감은 그대로인데 기사만 많아지니. 주말까지 일하죠. 쉬는 날이 거의 없어요. 열심히 해야 살아갈 수밖에 없쟎아요".

 

 

현재 전국 퀵서비스기사는 대략 17만 명가량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오토바이 면허만 있으면 누구나 뛰어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실제 규모는 휠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치열한 경쟁 속에 더 많은 '오더'를 따내려면 시간이 곧 돈일 수밖에 없다. 시내 곳곳을 지날 때마다 가장 빠른 길과 시간대별 도로 상황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도 그래서다.

 

"강남에서 대로변이 막히면 골목길로 들어가 가로지르기도 하죠. 출근할 때마다 아내는 안전운전하라고 신신당부하지만 조금이라도 일을 더 하려면 무리할 때가 많죠".

 

골목길과 대로를 오가며 종횡무진하다보니, 사고 위험은 늘 소 씨를 따라다닌다. 비나 눈이 오면 위험은 배가된다.

 

"지난주에도 여의도 율동로에서 승용차가 뒤로 들이받았어요.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언제 어느 순간에 무슨 일이 날지 몰라 늘 긴장하고 있어요".

 

'퀵맨'에게는 사고도 사치다. 사고 처리 비용이나 병원비, 그 날 기회비용 등을 생각하면 아플 겨를조차 없다.

 

상존하는 교통사고 위험들을 모두 이겨내더라도 다양한 변수가 소 씨를 기다리고 있다. 이 날도 오전 11시쯤 도착한 여의도 한 방송국에서 보안장치를 빨리 열어주지 않는 바람에 '무려 10분'을 허비했다.

 

"4층에 올라갔는데 전부 보안장치가 있어서 문이 닫혀있고 전화도 할 수 없게 돼 있더라구요. 발만 동동 굴렀죠. 우리 일은 수취인이 물건을 받아야 완료되잖아요".

 

보내는 사람이 주소나 받는 사람 전화번호라도 잘못 적어준 날이면 눈앞이 깜깜해진다. 받는 사람이 전화를 안 받아 발을 동동 구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문을 두드렸는데 사람이 없거나 전화해도 대꾸가 없으면 '아, 뭐가 또 하나 틀렸구나' 하는 거죠. 이런 일이 많으면 하루에 너댓 번도 생겨요".

 

어느덧 점심 시간. 소 씨에게는 그저 '주문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시간'의 의미를 가질 뿐이다.

 

"점심 시간 그런 거 우리는 몰라요. 정말 배가 고프면 길거리에서 김밥이나 우동을 씹으며 달려가기도 하죠".

 

이렇게 실시간으로 '오더'를 확인하며 수도권을 누빈 지 11시간째. 이날 오후 6시 다시 만난 소 씨의 하루 실적은, 그의 표현을 빌자면 '시원찮았다'.

 

"오늘 한 거 다 하면 한 10만원, 금요일인데 많이는 못 번 거죠. 원래 22~23건씩 하는데 오늘은 15건밖에 못했어요".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도 무거워진다. 이러니 주말에도 일손을 놓을 수 없다.

 

"하루 돌아다니면 입에서 단내가 나요. 그래도 못 벌 때는 더 일해서라도 수입을 올려야죠".

 

때로는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만나 서럽기도 하고, 온종일 매연 가득한 도로에 내던진 몸뚱이에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지친 몸으로 들어선 현관에서 "오늘 하루 고생하셨어요" 하며 반기는 아내와 자식들 덕분에 다음날 아침 다시 무전기와 스마트폰을 챙긴다.

 

"애들 보는 재미에, 자식들 크는 맛에 그저 열심히 일하고 사는 거죠".

 

어둑해진 '불금'의 저녁. 고단한 몸을 이끌고 다시 가족의 품을 향해 시동을 켜는 소 씨의 뒷모습은 역시 라이더가 아닌 노동자였다.

 

 

2013-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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