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평가인증제가 있으나마나한 '계륵'으로 전락하면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현장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어린이집 평가 인증제란 보육 시설의 질을 높이기 위해 4개월간의 심사를 거쳐, 일정 기준을 통과한 어린이집에 '인증 현판'을 부착할 수 있도록 한 국가 제도.
하지만 명확한 지침은 없는데 복잡한 서류 작성만 요구되다보니, 정작 그 정신적·물질적 피해는 고스란히 원생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CBS가 18일 서울 시내 10여 곳 어린이집 원장과 교사들에게 물어보니 "불필요한 서류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하소연이 일제히 돌아왔다.
강서구 A어린이집 원장은 "평가 인증 절차가 시작되면 수업할 시간도 부족해 합반하는 일이 잦다"며 "도대체 누구를 위한 평가인증인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과도한 서류 준비 때문에 밤샘 작업은 기본이 됐고, 이를 버티다 못해 어린이집을 떠나는 보육교사도 다반사란 것이다.
원장이 부랴부랴 대체 인력을 찾아 나선다 해도, 평가 인증 기간에 교사를 구하긴 '하늘의 별따기'다.
따라서 복잡한 인증 서류를 간소하하는 동시에 '현장 보육' 중심으로 평가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게 이들의 목소리다.
성북구 B어린이집 교사는 "평가 인증 때 요구하는 서류가 한 40여 종인데 중복되는 내용도 많다"며 "그런 서류를 통일하고 보육 활동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인증 항목에 다수 포함된 비현실적인 기준들도 조속히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은평구 C어린이집 원장은 "겨울에 수도꼭지를 틀었을 때 뜨거운 물이 나오면 '점수 미달'로 평가한다"며 "추운 겨울에 온수를 쓰지 말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고 혀를 찼다.
이 원장는 또 "아이들마다 개인 차이가 있는데도 하루 30분씩은 무조건 재워야 하는 게 평가 인증 절차"라며 "하지만 엄마들은 '왜 우리 아이를 재웠느냐'고 항의하기 일쑤"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황당한 기준도 문제지만, 애매한 기준이 많은 것도 문제다. 은평구 D어린이집 원장은 "명확한 기준이 없다보니 귀동냥해 짜맞추는 식으로 평가 인증에 임하는 경우가 많다"며 "일관성 있는 기준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어린이집 원장도 "올해 지표가 지난해와 다르고 내년 또 다르다"며 "현장에선 답답하기만 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천편일률적인 기준에 대한 불만도 높다. 원아 개개인의 개별성을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는 자율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마포구 E어린이집 원장은 "매일 두시간 30분 이상은 야외 활동, 한 시간은 실외 활동, 여기에 점심 시간과 낮잠 시간도 꼬박 채우게 돼있다"며 "나라가 정한 것만 다해도 벌써 귀가 시간"이라고 꼬집었다.
또다른 어린이집 원장은 "모든 어린이집을 점수로 매겨 따지려 하는 것 같다"며 "아이들과 얼마나 즐겁게 생활하고 보람있게 가르칠 것이냐, 중요한 건 그게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2013-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