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藥肉醫食'의 먹이사슬…최대 약자는 소비자

 

병원이 내준 처방전이 약국의 생존을 결정하는 의약분업의 폐해. 약국을 짓누르는 '먹이 피라미드'의 상층에는 비단 병원과 '약국 브로커'만 있는 게 아니다. 약국이 들어설 건물주도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상층부에 자리잡고 있다.

 

◈약국의 '삼중고'…병원 '리베이트', 브로커 '권리금', 건물주 '임대료'

 

먼저 브로커가 "약국이 들어오면 높은 임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며 건물주들을 현혹한다. 또 병원 임대료도 약국으로부터 받으라고 은밀히 제안한다.

 

제약회사 관계자 A 씨는 "브로커들이 건물주에게 병원에는 세를 받지 말라고 제안하는 게 보통"이라며 "대신 자신이 책임지고 약국을 들여 병원 임대료를 내도록 하겠다며 암묵적 동의를 이끌어낸다"고 했다.

 

건물주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는 제안임은 물론이다. 약사 B 씨는 "건물주가 건물 내 다른 업종보다 약국에 높은 임대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건물주들은 약국이 들어온다고 하면 무조건 높은 가격부터 제시하고, 깎아주는 체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의약 분업의 폐해가 불러온 악순환의 고리다. 그렇지만 약국이 '먹이 피라미드'의 최하층에 있는 것도 아니다. 최종 피해자는 결국 소비자다.

 

◈비싼 일반약 팔고 설명은 전무…소비자에 결국 피해 전가

 

리베이트를 비롯한 이런저런 금전적 부담 때문에 조제약만으로 약국을 운영하긴 힘들다. 결국 약사들은 일반약 판매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약값을 두세 배씩 부풀리기도 한다.

 

제약회사 관계자 A 씨는 "약사들로서는 월세가 비싼 데다 매출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원가 2만 원인 약을 6만 원에 팔기도 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별 필요가 없는 약을 끼워팔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A 씨는 "영양제는 물론 혈액순환제, 위장약 등을 권장한다"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필요없는 약을 자꾸 사가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병원 처방전에 기댈 수밖에 없는 약국은 또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다. 의사가 환자의 질환에 맞지 않는 약을 처방해주거나,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이 있더라도 입을 굳게 다물 뿐이다.

 

약사 B 씨는 "타이레놀처럼 낱개로 포장된 약 가운데는 포장을 분리했을 때 색이 변하면서 약효가 떨어지는 것들도 있다"며 "하지만 의사들은 '환자들이 불편해하니 무조건 포장을 뜯어서 주라'고 한다"고 털어놨다.

 

B 씨는 또 "항생제 경우도 주의사항 등을 충분히 설명해줘야 하는데 절대 말하지 못하게 한다"며 "환자들이 불안해한다는 건데, 돈보다 생명이 걸린 문제 아니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시민 임소연(42) 씨는 "약국에 가면 약을 한 웅큼씩 주는데 정작 설명은 들어본 적이 없다"며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소비자들도 이미 몸으로 폐해를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결국 처방전 때문"…약사법 개정 시급

 

결국 모든 문제점은 의약 분업의 기형적 구조에서 파생된다. 병원이 약국에 리베이트를 요구하고, 브로커가 중간에서 거액을 가로채고, 건물주까지 가세해 결국 소비자에 피해를 전가시키는 일련의 과정 모두가 그렇다.

 

현행 약사법 24조 2항 2호에 따르면, 약국 개설자가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처방전 알선의 대가로 금전이나 물품, 편의나 노무, 향응 또는 그밖의 경제적 대가를 제공하는 행위가 모두 금지돼 있다.

 

하지만 서울의 한 약사는 "약국이 병원에 리베이트를 건넬 때는 뭘 바라고 주겠느냐"며 "결국 처방전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실제 법 적용은 모호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다. 대한약사회의 법률 담당 관계자는 "약국 건물에 들어온 병원이 부담을 떠넘겨도 현행법상 불법으로 규정되긴 힘든 게 사실"이라고 했다. 약국이 병원과 가까이 있다는 지리적 이점만 있을 뿐, 그 자체만으로 '처방전 알선'이라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약국 브로커들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부동산중개업법으로 규제가 가능하지만, 실제 처벌까지 이른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들 브로커들은 대부분 제약회사 출신으로, 자격증도 없이 중개업에 뛰어든 이들이 많다.

 

약사회 관계자는 "브로커들이 거의 무자격인 데다, 중개수수료도 법정 기준을 훨씬 초과한다"며 "약사들이 신고만 하면 처벌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쥐를 찾긴 쉽지 않다.

 

'슈퍼 을(乙)'인 약사들이 이런 부조리에 대해 입을 뗄 수 있는 구조 자체가 아닌 것이다.

 

◈약국도, 관리 당국도 책임있긴 마찬가지

 

결국 약국들도 '생존'을 위해 '담합'이라는 불법에 가담하고 있긴 마찬가지다.

 

제약사 관계자 A 씨는 "높은 수익률을 원하는 건물주도, 건물주를 현혹하는 브로커도, 처방전을 미끼로 지원금을 받는 의사도 잘못"이라며 "하지만 부당한 걸 알면서도 계약을 하는 약사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런 관행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감독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관리 당국의 안이함도 의약분업의 폐해를 키워가고만 있는 실정이다.

 

서울시 보건의학 수사팀은 의약간 리베이트 등의 문제에 대해 "소문으로 듣고 있긴 하지만 적발되거나 관련 업무를 처리한 적은 없다"고 했다.

 

"불법행위가 암암리에 이뤄지기 때문에 고소 고발이 있기 전에는 해당 업장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해명도 뒤따랐다.

 

수사팀 관계자는 "서울 시내만도 해당업장이 수백 곳이 넘는데 어떻게 다 알겠느냐"고 반문했다.

 

◈'처방전 리필제' 등 대안 도입 필요

 

이런 악순환을 끊어내려면 일단 약사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게 업계와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약사법 24조 2항 2호의 '처방전 알선 대가'라는 말에 법망을 빠져나갈 큰 구멍이 있다는 얘기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약국 개설자가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것 자체를 아예 금지하는 수준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처방전 리필제'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현재 적용중인 '일처방 일조제 원칙'은 환자가 약을 분실하면 다시 병원에 들러 처방전을 받게 만든다.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자도 약이 떨어질 때마다 처방전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가야 하는 부조리가 내재돼있는 셈이다.

 

하지만 '처방전 리필제'가 시행되면 병원이 문을 닫은 주말에도 시급한 약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서울 관악구의 약사 C 씨는 "환자들이 처방전 한 장 만으로도 며칠치 약을 미리 지어놓을 수 있다"며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의약분업이 시행된 지도 어느덧 13년. 이제는 '분업'을 넘어 '협업'의 시대로 전환해야 할 시점인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오용도, 남용도 없는 제도 정립이 시급하다.

 

2013-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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