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로 출범 50일을 맞은 박근혜정부가 대대적인 '경찰 개혁'에 착수했다. 특히 개혁의 초점이 이른바 '경대 무력화'에 맞춰진 것으로 알려져, 파란이 예상된다. 정권 초반부터 청와대와 갈등을 겪은 경찰에 대한 '손보기' 차원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대 출신 담합 깨라…대대적 개혁 불가피"
정부 고위 인사는 최근 내부 실무진들에게 "경대 출신들의 담합을 깰 수 있는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다른 정부 관계자도 "경대 출신들의 조직 독점 및 집단주의가 심각한 상황"이라며 "대대적인 개혁 작업이 불가피하다"고 '수술'을 예고했다.
'경대 출신'은 지난번 성접대 동영상을 놓고 불거진 청경(靑警) 갈등의 핵심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동안 경찰 고위직을 휩쓸어온 경찰대학교 졸업생들을 일컫는 말이다.
지난 1980년 군사정권 시절 개교한 경대는 1985년 1기를 최초 배출한 이래 매년 법학과 60명, 행정학과 60명 등 120명의 졸업생을 내놓고 있다.
전액 장학금 및 경위 임용이란 혜택 속에 4년간 숙식을 함께 하며 뒹군 이들이기에, 서로가 느끼는 연대감은 '동일체'원칙으로 유명한 검사만큼이나 끈끈하다.
재학 당시는 물론 임용 이후에도 사법고시와 행정고시 등에 꾸준히 합격하면서 '엘리트 의식' 또한 남다르다.
경대 출신들이 수사권 독립을 강력 주도해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어느 모로 보나 검사들보다 뒤질 게 없다는 자부심이 깔려 있단 얘기다.
실제로 경대 출신들은 지난 2006년말 1기생이 첫 치안감에 오른 이후, 고위직 인사가 날 때마다 최소 절반가량 차지하며 세를 과시해왔다.
지난 2011년만 해도 10만 경찰 가운데 오직 다섯 명뿐인 치안정감의 네 자리를 휩쓸 정도였다.
◈경대 폐지론 등 재부상…인사도 '퇴조 현상' 뚜렷
하지만 참여정부 초반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 개혁에 주력했듯, 박근혜정부의 초반 타깃은 경대 출신으로 집중되고 있다.
먼저 그동안 수면 아래 가라앉아있던 △경대 폐지 △중앙경찰학교와의 통합 △일선 경찰을 위한 재교육기관으로의 전환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성한 경찰청장이 지난달말 인사청문회 당시 "경대 정원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한 것도 같은 흐름에서다.
정부 관계자는 "새로운 방안보다는 지금까지 논의돼온 내용 가운데 실효성을 판단, 추진 여부를 검토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정부 출범 이후 단행된 일련의 경찰 고위직 인사도 이런 기류를 반영한다. 지난달 29일 발표된 치안정감 및 지난 8일 치안감 인사에서 경대 출신의 퇴조 현상은 뚜렷했다.
치안정감 5명 가운데 단 한 명, 치안감 승진자 4명 중에도 한 명만이 포함된 것. 이마저도 수사와 무관한 보직을 할당받았다.
차기 치안총감으로 유력 거론됐던 강경량 전 경기청장 대신, 이성한 경찰청장이 임명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청장은 동국대 경찰행정학과를 나온 간부후보생 출신으로, 경대 1기인 강 전 청장은 결국 정복을 벗게 됐다.
인사에 밝은 경찰 한 고위 간부는 "청와대 민정라인과 검찰 출신들이 막판에 움직여 비(非)경대 출신을 지원한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로써 경대 1기의 선두주자였던 윤재옥 현 국회의원에 이어, 동기인 이강덕 전 해양경찰청장도 '경대 출신 최초' 경찰청장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명예퇴직했다.
역시 동기인 서천호 전 경찰대학장 역시 '1기의 꿈'을 이루는 데 실패하고 명퇴했지만, 경남 남해에 진주고 출신인 그는 국가정보원 2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군기 잡고, 위상 낮추고…총대 멘 안전행정부
경대 출신에 대한 견제 작업이 시작되면서, 경찰 전체에 대한 정권 차원의 통제도 강화되고 있다. 특히 안전행정부가 '총대'를 멘 분위기다.
유정복 장관은 지난 11일 김정석 서울청장을 비롯한 전국 지방경찰청장들을 모두 소집했다. '치안감 임용식'을 명목으로 내세웠지만, 워낙 사상 초유의 일이어서 뒷말이 무성하다.
경찰 한 간부는 "경찰과 안행부는 검찰-법무부 관계나 마찬가지"라며 "법무부 장관이 전국 지검장을 소집한 적이 있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장관이 인사권을 갖고 있긴 하지만, 수사기관인만큼 경찰도 그동안 독립성을 보장받아왔다는 얘기다. 이 간부는 "최측근인 유 장관의 행보는 결국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것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또다른 경찰 간부도 "최근 유 장관이 경찰 고위 간부들을 수시로 불러 보고를 받는 걸로 알고 있다"며 "비서실이 주도하고 있다는데, 직할 체제로 가겠다는 건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안행부측은 이에 대해 "장관이 경찰 간부들을 불러 보고를 받는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안행부가 '현장 중심 재배치'를 명목으로 경찰 조직 개편에 나선 걸 놓고도 시선이 곱지 않다.
안행부는 지난 11일 경찰청과 16개 시도 지방경찰청 등 본부 규모를 줄이는 한편, 안행부에 파견되는 치안정책관의 직급도 현행 경무관에서 총경으로 낮추기로 했다.
또 장·차관 비서실에 근무중인 다른 경찰 간부도 현행 6명에서 절반인 3명으로 축소하기로 했다.
유정복 장관은 "국민과 관계없는 일에 시간이나 예산을 낭비하지 않도록 조직 진단을 정확히 해, 민생·현장 중심으로 정부인력을 재배치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조치에 대해 경찰 내부가 술렁이고 있음은 물론이다. 서울 지역 경찰 한 간부는 "당연히 경찰의 대외적 위상도 낮아지지 않겠느냐"며 "파견 축소 역시 인사 적체를 불러올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당초 지난주로 예상됐다 지연되고 있는 경무관 인사를 놓고도 뒤숭숭하다. 승진자 없이 전보 인사만 단행되면서 적체를 가중시킬 거란 소문이 파다해서다.
◈'성접대 동영상' 수사, 결정적 '괘씸죄'로 작용한 듯
이처럼 정권 차원의 견제가 시작된 배경에는 이른바 '성 접대 수사'가 자리잡고 있다는 게 경찰 안팎의 중론이다.
경찰이 건설업자 윤모(52) 씨의 성 접대 의혹 수사 과정에서 사안마다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운 게 화근이 됐다는 것이다.
내사 여부나 동영상 확보 여부 등을 놓고 "있다"와 "없다", 또는 "보고했다"와 "그런 적 없다"로 엇갈린 게 '괘씸죄'로 작용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검찰 출신인 청와대 곽상도 민정수석이 사퇴 압박에 몰리기도 했고, 의혹의 당사자였던 김학의 법무부 차관은 결국 사퇴했다. 특히 김 전 차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강한 신뢰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경찰청 범죄정보과의 내사로부터 이번 수사가 시작된 점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 역시 수사권 조정을 노린 경대 출신들이 탁월한 정보수집력을 활용, 검찰 고위직을 겨냥한 것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와 관련, 법조계 한 관계자는 "검찰 입장에서는 경대 출신들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조현오 청장 시절 경대 출신들이 주도해 만든 곳이 바로 범죄정보과인 만큼, 다분하게 의도가 엿보인다는 얘기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검란'(檢亂)의 시발점이 된 김광준 부장검사의 뇌물 수수 사건 역시 범죄정보과 내사에서 비롯된 바 있다.
경찰 한 고위 인사는 "현 정권에서 검찰 출신들이 곳곳에 포진해 키를 잡고 있는 만큼, 경대 출신들이 지금까지처럼 승승장구를 하긴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결국 경찰의 성 접대 수사와 이로부터 불거진 청경 갈등, 또 정부의 '경찰 개혁' 착수까지 일련의 모든 과정에는 뿌리 깊게 패인 검경 갈등이 자리잡고 있다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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