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공식 취임하면서 오른손을 들고 약속했다. 그 선서의 첫마디는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였다. 그 헌법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란 명제로 시작한다. 약속의 대상도, 이 나라의 주인도 국민이란 뜻이다.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선서한 대로 초심을 잃지 않기를 기대한다. 5년 임기 동안 헌법을 준수하는, 주인과의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 되길 바랄 뿐이다. 사실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헌법대로 하면 된다. 그게 준수의 사전적 의미다.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하면 된다는 국민들의 강한 의지와 저력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뤘다"고 했다. 사실 국민들도 '완료형'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지난 5년을 지나보니 민주화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헌법대로 하면 되는데, 막상 권력을 쥐면 반대로 했기 때문이다.
헌법은 21조 1항에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못박았다. 민주화의 요체다. 이 나라의 주인들이 지닌 '표현의 자유'는 법 체계의 최상위인 헌법이 보장하고 있다. 언론은 이를 구현하는 수단이자, 국민이며 민심 그 자체다.
'표현의 자유'에 법적 무게중심을 놓긴 미국이 더하면 더하다. 수정헌법의 제1조에 올려놨을 정도다. 언론이 갖는 의미와 상징성이 시공을 초월한다는 방증인 셈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제헌 시절보다도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가히 반(反) 헌법적인 상황이라 할 만하다.
국경없는기자회가 최근 발표한 '언론 자유 지수'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179개국 가운데 50위를 기록했다. 이명박정권의 방송 장악이 극심했던 2009년엔 69위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지난 5년간 중징계를 당한 언론인도 450명에 이른다. 해고된 언론인만 28명이다. 여전히 18명은 제자리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청문회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무슨 비리나,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도 아니다. 공정한 보도를, 표현의 자유를, 그리하여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일신의 영달을 내던진 이들이다. 헌법을 준수하려는 대통령이라면 일순위로 지켜내야 할 사람들인 것이다.
따라서 새 정부가 주력해야 할 최우선 국정 과제 가운데 하나는 '언론 자유'의 회복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길이다. 하지만 출범초기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는 언론에 대한 인식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국정 비전으로 제시한 5대 국정목표와 21개 실행전략, 140개 국정과제가 그렇다. 어느 한 구석에서도 언론 자유의 신장은커녕, 보장 약속조차 찾아볼 수 없다. 해직 언론인 복직 문제 역시 아예 무대책이다. 뒷전에라도 밀려있다면 다행이라 여길 정도다.
‘언론 자유’ 문제는 국격 회복을 위해서라도 중요한 국정 과제다. 불과 5년새 서른 곳 가까운 나라가 민주화 측면에서 우리를 추월했다. '경제 부흥'도 '한강의 기적'도 중요하지만, 절실하게 성장이 필요한 건 차라리 민주화다.
1인당 국민소득은 이미 2010년에 2만 달러를 넘어섰다. 무역 규모도 2011년에 1조 달러를 돌파했다. 지금은 지구촌 10위권의 경제대국임에도 민주화 척도는 여전히 50위 바깥을 가리키고 있는 현실을 곱씹어볼 시간이다.
21세기에도 산업 성장만을 강조하는 정부는 1%를 행복하게 만들 수는 있을지언정, 박 대통령도 얘기하는 ‘100% 국민 행복 시대’와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헌법을 준수하려면 소통해야 한다. 헌법이 국민에게 '말할 자유'를 부여한 것은, 역으로 위정자에게 '들을 의무'를 부과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말할 자유'와 '들을 의무'가 조화를 이룰 때 국민들은 '소통'이라 부른다.
그 '말할 자유'의 최일선에 서있는 게 바로 언론이다. 헌법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이미 '불통' 논란을 빚은 인사를 언론과의 최일선 소통 창구인 청와대 대변인에 다시 앉혀놨다. 다른 인선들도 논란이 있긴 매한가지다. 국민이 뭐라 하든, 언론이 뭐라 하든 ‘들을 의무’는 외면하겠다는 것인지 우려스러울 따름이다.
민주화 시대의 대통령이라면 '소통' 역시 헌법적 가치임을 인식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항상 뒤따르는 '불통' 이미지를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중요하다. 새 정부는 법치를 중시하겠다고 한다. 대통령은 '법대로' 위에 '헌법대로'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2013-02-27 기자협회보 '우리의 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