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아침 경제계의 최대 화두는 요동치는 환율도, 차기 정부의 '경제 민주화' 방향도 아니었다.
국내 양대 경제지(紙)로 꼽히는 매일경제신문(이하 '매경')과 한국경제신문(이하 '한경')의 사활을 건 '전면전'이 이날 조간 지면과 전날 온라인 가판을 통해 전격 발발했기 때문.
'지상(紙上)전'을 통해 공식 선전포고를 한 곳은 특별취재팀까지 꾸린 한경이다. 한경은 이날 1면 톱기사와 6면에 <'폭주 언론' 매일경제를 고발한다>는 제하의 비판 기사를 쏟아냈다.
한경은 먼저 <매일경제, 광고·협찬 안하면 무차별 '보복 기사'>란 제목의 1면 톱기사를 통해 "매경의 일탈과 파행, 횡포를 방관할 수 없다"며 "매경의 폭주를 지금 제지하지 않는다면 장차 언론을 빙자한 거악(巨惡)이 출현할 수도 있다"고 비판 보도 배경을 밝혔다.
한경은 "매경은 광고나 협찬을 거부하는 기업에 사소한 잘못을 트집 잡는 보복성 기사를 서슴지 않아왔다"며 "한 편집 간부가 금융권에 광고 단가 인상을 요구하면서 협박성 이메일을 보냈다가 들통이 난 것은 아주 작은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어 △자사가 투자한 고양시 삼송지구 주택사업에 홍보성 기사를 남발한 뒤 사업이 여의치 않자 투자금을 돌려 달라며 관련 업계를 무차별로 압박한 것 △2011년 종합편성채널 출범 당시 자본금을 충당하기 위해 출자를 거절한 수많은 기업과 금융사를 돌아가면서 기사로 '맹폭'한 것 등을 그 실례로 열거했다.
한경은 특히 "광고를 내거나 자본금을 달라고 해서 안 주면 고발성 비판기사를 게재하는 식이라면 이미 언론일 수 없다"며, 사실상 매경을 '언론' 반열에서 끌어내렸다.
이날 지면을 도배한 기사들의 제목은 <'폭주언론' 매경, 종편 출자 꺼린 기업들 돌아가며 '융단폭격'>, <도 넘은 '머니 저널리즘' 경영약점 잡아 집중포화…기업 '날벼락' 중견기업·은행 가리지 않고 전방...>,
한경의 전면적인 '선전 포고' 배경은 스스로의 기사 내용에도 녹아 있다.
한경은 "매경은 지난 2월 2일 한국경제TV의 전 PD가 수뢰 혐의로 구속되고, 방송에 출연한 한 증권전문가가 방송 전에 미리 사둔 주식을 추천하는 방법으로 수십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올린 사건을 A1면과 A7면에 걸쳐 대대적으로 보도했다"고 지적했다.
"매경이 이번 사건을 개인 범죄가 아닌 한경TV의 조직범죄인 것처럼 유달리 대서특필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
앞서 매경은 지난 2일자 1면 톱과 7면 전체에 실은 <자본시장 독버섯 고발한다> 등 네 꼭지의 기사를 통해, 한경TV 전(前) PD와 증권 전문가가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된 사실을 대서특필했다.
매경의 이같은 보도는 언론의 정도를 벗어난 '보복 공세'라는 게 한경측 주장이다. 하루 전날인 1일 한경이 매경 오너인 장대환 회장을 거론했다는 이유만으로 전사적인 융단 폭격에 나섰다는 것이다.
한경은 지난 1일자 4면 '인사청문회 공포' 기사에서 김용준 총리후보자 낙마와 관련, 과거 사례를 소개했다. 이 가운데 <장상, 장대환 위장전입에 '발목'>이라는 제목과 함께 장 회장의 사진을 실은 것을 매경이 문제삼았다는 것이다.
한경은 "장 회장은 2002년 김대중 정부의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받았지만 탈세 등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되면서 청문회 벽을 넘지 못했다"며 "장 회장이 포함된 기사에 대한 매경식 반응이 바로 상상을 뛰어넘는 무차별적인 공격성 기사"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매경이 같은 언론에조차 이런 행태를 보인다면 그동안 기업들에 얼마나 많은 폭력적 영업 관행을 보여왔겠느냐"며 "실제로 지난 수십년간 매경이 보여준 행태는 도를 넘어선 경우가 많다"고 이번 '선전 포고'의 배경을 거듭 설명했다.
한경의 공식 '선전 포고'로 당장 매경도 6일자 지면 등을 통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매경 관계자는 "한경의 이번 보도는 전혀 사실무근이며, 주가조작사건 보도에 대한 보복"이라고 규정했다. 따라서 명예훼손을 비롯한 모든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유력 매체들끼리 '폭주', '거악', '횡포', '일탈' 등의 표현을 써가며 전면전을 벌이는 건, 지난 2004년 MBC와 조선일보의 갈등 이후 사실상 근 10년만에 처음이다.
당시 MBC의 '시사매거진 2580'은 3주 연속으로 내보낸 <조선일보 해부 시리즈>를 통해 친일 역사와 편파보도 등을 집중 조명했고, 이에 조선일보도 사설과 칼럼 등을 통해 반격하면서 갈등이 고조된 바 있다.
다른 게 있다면 당시 갈등이 우리 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과 관계가 있던 데 비해, 이번 한경-매경 갈등은 이념이나 가치관과 무관한 '진흙탕 싸움'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번 전면전의 원인은 단순히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보도 때문이 아니라,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광고시장을 둘러싼 이전투구 성격이 짙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경제 매체는 우후죽순처럼 늘어났지만 생존을 위한 '파이'는 한정돼있다보니, 광고성 기획기사를 양산하거나 광고주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등 비정상적 행태가 계속돼왔다는 것.
다른 경제지의 한 관계자는 "이번 갈등은 경제계는 물론 난립한 경제 매체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며 "일단은 광고와 관련된 비정상적 행태가 당분간 잠잠해지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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