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와 해이로 빛바래는 '국민행복기금'

 

 

차기 정부가 가계부채를 해소하겠다며 내놓은 '국민행복기금' 출범을 앞두고, 벌써부터 사칭 사기 피해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공약 단계부터 우려를 불러왔던 '모럴해저드'(Moral Hazard), 즉 도덕적 해이 현상이 사회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 것.

박근혜 당선인의 핵심 공약이기도 한 '국민행복기금'은 최대 18조원의 기금을 조성, 신용불량자 320만명의 연체 채무를 절반씩 탕감해준다는 게 그 골자다.

이에 따라 인수위는 이르면 차기 정부가 출범하는 3월부터 제도를 운영하기로 하고, 올해에만 12조원의 기금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매년 신용불량자 6만명씩 5년간 30만명의 빚을 절반씩 깎아준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산관리공사(캠코)의 신용회복기금 등을 털어 다음달 21일까지 종잣돈 1조 8천억원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또 기존에 있던 캠코의 저금리 전환 대출인 '바꿔드림론'을 확대, 20%를 웃도는 나머지 빚도 금리를 10% 수준으로 낮춰 장기간 갚게 한다는 게 박 당선인과 인수위 구상이다.

하지만 제도 시행을 앞두고 올해초부터 사회 곳곳에서 역기능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일단 정상적으로 빚을 갚아 신용을 회복하기 위해 개인 회생 절차를 찾던 사람들이 머뭇대기 시작했다.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어도 절반을 탕감 받을 거란 기대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들어 신용회복위원회에도 회생 절차 대신 국민행복기금을 묻는 상담 전화가 늘어나고 있다. 한 상담원은 "아무래도 채무 감면해서 문의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하루에 2~3건 정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출범도 하기 전에 전국적으로 이런 상담이 이뤄지고 있는 걸 감안하면, 출범시엔 정상적인 회생 절차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신용회복위원회 관계자는 "국민행복기금과 관련해 아직 어떤 지시사항도 내려온 게 없다"며 "정식으로 발표되면 (문의 전화가) 폭주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낮은 금리로 갈아타게 해주겠다는 공약을 사칭한 신종 사기 피해도 잇따르고 있다는 것.

실제로 국민행복기금 운영 주체로 유력시되는 캠코를 사칭한 불법 대부업체들이 올초부터 '특별 행사' 운운하며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햇살론 등 서민금융 상담을 지원해온 한 업체에는 "국민행복기금을 사칭한 사기에 당했다"는 피해자 호소만도 매일 2~3씩 접수되고 있는 형편이다.

업체 관계자는 "조금만 있으면 정부 시책이 발표될테니 지금 대출을 받아라, 그냥 연체시키면 탕감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접근해서 고금리 대출을 유도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국민행복기금을 거론하면서 제1금융권 이용이 어려운 저신용·저소득자의 다급한 심리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

피해 규모도 보통 한 사람당 3백만원에서 1천만원에 이르지만 "지금 대출을 받아야 금리를 절반 깎을 수 있다"는 사탕발림에 40% 가까운 금리도 감수하기 일쑤다.

이 업체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받아온 금리는 29.9%부터 39.9%까지 다양하다"며 "상담 전화 가운데 대부분은 이미 피해를 본 사례들"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캠코측은 국민행복기금의 대상이나 지원방식 등은 아직 정해진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입장이다.

캠코 관계자는 "기존 바꿔드림론을 신청받을 때도 반드시 상담원이 본인들에게 일일이 확인하고 있다"며 "국민행복기금 운운하면 100% 사기라고 보면 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현행 '바꿔드림론'으로 전환할 때도 연체없이 6개월간 채무를 유지해야 신청 조건이 되는 만큼, 이러한 대출 종용이 캠코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당장 하루하루가 막막한 서민들은 '빚 절반 탕감'이란 감언이설 앞에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다보니 피해는 갈수록 늘어가고 있지만, 정부 당국은 지켜보자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22일 현재까지 당국이나 캠코에 공식 접수된 '국민행복기금' 사칭 피해 사례는 한 건도 없다는 것.

금융 당국 관계자는 "아직 접수된 피해 사례가 없는 만큼, 접수가 확인되면 피해 예방 차원에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만 했다.

다만 신고되지 않은 피해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조만간 긴급 공지 등을 통해 금융 소비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킨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금융계 한 관계자는 "당국에선 민원 접수보다 서류 안내 위주로 하다보니, 피해자들이 신고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며 "기금 출범이 다가올수록 피해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이미 재원 마련 방안을 놓고 한 차례 도마에 오른 국민행복기금. '가계 부채'라는 사회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내놓은 공약이 또다른 사회 문제를 불러오고 있는, 2013년 대한민국의 우울한 현실인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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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le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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