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135조원에 이르는 새 정부의 복지 재원 마련 방안이 '간접 증세(增稅)'로 큰 가닥을 잡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내건 '따뜻한 성장'과 '경제 민주화'는 증세 없이 추진하되, '지하경제 양성화'로 상징되는 추가 세원을 찾아내 재원을 확보한다는 것.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관계자는 9일 "직접 증세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며 "간접 증세를 골격으로 재원 조달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11일부터 시작될 정부 업무보고에서도 부처별 지출 및 예산 절감 방안이 중점 논의될 전망이다.
인수위의 이같은 '간접 증세' 방침은 박근혜 당선인이 후보 시절부터 이미 공언한 방식이다.
박 당선인은 지난달 초 TV토론 당시 "비과세 감면 제도를 정비한다거나 지하경제를 활성화해 매년 27조원, 5년간 135조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복지 공약 실천에 매년 필요한 27조원 가운데 60%인 16조 2천억원은 세출 절감을 통해, 나머지 40%인 10조 8천억원은 '지하경제 양성화' 등 추가 세원 발굴을 통해 확보하겠다는 얘기다.
인수위는 특히 '지하경제 양성화'의 핵심 과제로 △'자금 세탁' 적발 확대 △가짜 석유 근절 등 두 가지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백조원대로 추정되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할 경우 매년 최소한 1조 6천억원가량의 세수 확대 효과를 꾀할 수 있다는 것.
제대로만 되면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19% 수준인 조세부담률을 21%선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게 인수위측 판단이다.
시중에 유통중인 가짜 석유만 근절해도 최소 5천억원 이상 추가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건데, 실제로 올해 예산안엔 가짜 석유 단속을 위한 65억원의 관련 예산이 편성됐다.
인수위는 또 불법 자금 세탁을 감시하는 금융정보분석원(FIU) 정보를 국세청이 적극 활용할 수 있게 법안 제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현재는 자체 열람 권한 없이 범칙사건 조사 등에만 FIU의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데, 이는 전체의 2.3%에 불과하다. 국세청은 이것만으로도 지난 3년간 4천 3백억원의 세금을 더 걷었다.
지난 2011년 한 해만도 FIU에 보고된 '자금 세탁' 의심 건수가 33만 건에 이르는 걸 감안하면, 세수 확보의 '엘도라도'인 셈이다.
하루에 2천만원 이상 오가며 조세범죄 가능성이 짙은 '고액 현금거래' 건수도 2011년 한 해만 1천 130만 건, 210조원 규모에 이를 정도다.
이에 따라 국세청이 일반 세무조사에도 '고액 현금거래' 자료를 활용할 수 있게 한 개정안이 지난해 8월 이미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에 의해 발의된 상태다.
국세청 역시 "FIU 정보를 공유하게 되면 매년 최소한 4조 5천억원 이상의 세수 확대 효과를 볼 수 있다"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반면 FIU의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는 부정적이다. 다른 나라 사례를 봐도 FIU 기능은 징세 영역과 엄격히 분리하는 게 추세라는 것.
금융위 한 관계자는 "자금 세탁과 테러자금 몰수 등 설립 취지에 맞지 않을 뿐더러, 사생활 침해 우려도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세수 확보 방안이 시급한 박 당선인과 인수위 상황을 감안할 때, 아예 정부 조직 개편 과정에서 FIU의 소속을 옮기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FIU는 지난 2000년 설립 이후 줄곧 재정경제부 산하로 있다가, 5년 전 MB인수위에서 금융위 산하로 재편됐다.
일단 오는 12일로 예정된 국세청과 15일 금융위원회의 경제1분과 업무보고에서는 FIU 정보 공유 문제를 놓고 '힘겨루기' 양상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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