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가맹점의 '역습'…소비자는 '볼모'

 

카드업계와 대형가맹점간 '수수료 전쟁'의 유탄이 결국 소비자들에게 튀고 있다.

'슈퍼갑(甲)'으로 불리는 대형가맹점들이 수수료율 인상을 강력 거부하고 나서면서, 신용카드의 무이자 할부나 자동 이체 기능이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것.

3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대형 할인점 매출 1위인 이마트는 새해 들어 대부분 신용카드의 무이자 할부 서비스를 중단했다. 신세계백화점도 일부 제휴카드 외에는 무이자 할부 서비스를 없앴다.

다른 대형 할인점이나 백화점, 온라인 쇼핑몰이나 홈쇼핑, 자동차 보험료 역시 새해 들어 무이자할부나 할인 이벤트 등을 없애버렸다.

속사정은 이렇다. 카드사들은 지금까지 대형 가맹점들의 수수료를 낮춰주는 대신, 무이자 할부나 할인 또는 쿠폰 증정 등에 소요되는 이벤트 비용의 70% 이상을 부담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22일부터 시행된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에 따라 새해부터는 카드사가 50% 이상 부담할 수 없게 됐다. '부당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

따라서 무이자 할부를 계속하려면 앞으로는 나머지 50%를 해당 가맹점들이 부담해야 하지만, 대형 가맹점들은 "우리가 부담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카드 수수료도 올라갈 판에 마케팅 비용까지 더 부담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목돈 없어도 큰 부담 없어 애용할 수 있던 신용카드의 '주요 서비스'가 일거에 무용지물이 되고 있는 셈이다.

최근 한국소비자원이 카드 이용자 1천명에게 물어본 결과 63.9%는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42.1%는 '할인 등 부가서비스와 무이자할부'를 사용 이유로 꼽았다.

카드사들이 수수료율 인하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각종 할인 혜택과 포인트 적립, 부가서비스를 축소하고 있는 추세인 걸 감안하면 전통적인 신용카드의 '메리트'가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수수료 갈등에 따른 부작용은 이뿐만이 아니다. 카드 자동이체 등 기존 편의성마저 갈수록 위협받고 있는 형편이다.

실제로 아직 수수료 협상이 끝나지 않은 대형 이동통신사들의 경우가 그렇다.

매월 이동통신요금을 신용카드로 자동이체하는 소비자들이 많지만, 국내 이동통신사들은 새해 들어 카드사의 통신료 자동납부 접수 대행 서비스를 중단했다.

통신사를 통해 신청하는 소비자들에게만 신용카드로 요금을 자동납부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 국내 이동통신 이용자 가운데 40%가량은 신용카드로 요금을 결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통사들의 이같은 조치는 카드사가 고지한 새 수수료율이 너무 높다는 불만에 따른 것이다.

앞서 카드사들은 기존 1~1.5% 수준이던 이통사들의 수수료율을 1.8% 이상으로 높여달라고 요청했지만, 통신업계는 "산정 근거부터 먼저 공개하라"며 맞불을 폈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는 "이통사의 신용카드 거래는 매월 한차례 이뤄지는 자동 요금 결제가 대부분"이라며 "타 업종에 비해 결제 대행 수수료가 매우 낮다"고 주장했다.

수수료율이 인상되면 이동통신사가 추가로 부담해야 할 금액은 SK텔레콤의 경우 385억원, KT 329억원, LG유플러스 144억원 수준이다.

이에 따라 통신업계는 카드사를 상대로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위한 법률 검토에 착수했으며, 이르면 다음주쯤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번 카드 수수료 체계 재편을 주도한 금융당국 역시 강력 대응 입장을 밝히고 있어, 갈등은 쉽게 봉합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이통사들의 '버티기'가 도를 넘어섰다"며 "이달중 이동통신사 수수료율을 집중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1.8%대의 수수료율은 1.5~2.7%까지 허용한 새 체계에서도 여전히 낮은 편인데도, 이통사가 1.5%를 고집하는 건 일종의 '우월적 지위 남용'에 해당한다는 것.

금융당국은 점검 결과 불공정 행위로 판단되면 해당 업체를 형사 고발하고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기관에 통보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금융위원회도 이통사 관계자들을 만나 이처럼 단호한 방침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여신법상 '우월적 지위 남용'으로 부당한 수수료율을 요구하면 1년 이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문제는 이같은 처벌 수위가 '공룡'으로 불리는 이통사들에겐 '새 발의 피'로 여겨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통 3사의 매출액은 지난 2011년 기준 42조원으로, 영업이익만 4조 4천억원에 이른다. 수수료율 재편에 따라 추가 부담해야 할 금액도 사실상 영업이익의 2%도 채 안 된다.

카드업계 한 관계자는 "이통사들이 정말 해도 너무한 것 같다"며 "통신비 원가 공개 요구는 십수년째 뭉개면서 수수료율 산정 기준을 공개하라는 건 그야말로 적반하장"이라고 지적했다.

카드사들의 경우 지난해 3분기만도 일년 전에 비해 25.5% 순익이 감소했고, 이번 수수료율 인하 조치로 인해 올해에도 순익이 최대 30%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zzle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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