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삐걱대는 '박근혜표 복지'

 

첫 시험대인 '인사'(人事)를 놓고 여당 내부에서조차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바야흐로 두 번째 시험대에 올랐다.

바로 예산안 처리 여부다. 대선 이후 정국 이슈로 떠오른 내년 예산안 논란의 핵심은 일명 '박근혜표 복지예산' 6조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로 요약된다.

'박근혜표 복지 예산'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이 내걸었던 복지 공약들을 이행하겠다며 여권이 들고 나온 예산들이다.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서민 일자리를 지원하는 데 각각 1조 2천억원씩, 0세부터 5세까지 무상보육에 6천 8백억원, 하우스푸어와 렌트푸어 해소 등 부동산 대책에 5천억원, 또 '반값 등록금'을 표방한 대학생 장학금에 1천 8백억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선 직후 이한구 원내대표가 국채 발행까지 불사하겠다며 처음 운을 뗐다. 예산안도 통과하기 전에 여당이 증액을 요구하고 나온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야당에서 즉각 "점령군 같은 발상"이라며 반발하고 나선 까닭이다.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 직무대행은 27일 "재정 적자를 더이상 확대시켜선 안 된다"며 "위험한 발상"이라고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심지어는 그동안 '균형 재정'을 강조해온 이명박정부조차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내년 예산안을 대폭 수정하기엔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이 이를 반영한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 예산안은 342조 5천억원 규모. 국제 관례상 균형 재정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사실은 이마저도 5조원 가까운 적자 편성이다.

하지만 박근혜 당선인을 비롯한 여당은 일정 수준의 적자 재정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공약 이행'이 우선 순위라는 것이다.

박 당선인은 전날 "대선 기간 민생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약속을 한 게 있다"며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국채 발행이 필요하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박근혜 당선인과 새누리당이 이런 공약들을 내놓을 때 국채 발행 가능성은 언급한 적조차 없다.

후보 시절 박 당선인은 "가뜩이나 경제도 어려운데 부담부터 드리겠다는 태도는 옳지 않다"며 "비효율적으로 낭비되고 있는 게 많다"고 강조했었다.

정부의 중복 예산이나 비과세 감면 혜택 등을 일부 줄이면 재원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으므로, 증세 또한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논란이 일자 새누리당은 "세출 삭감, 중복예산 줄이기, 비과세와 세금 감면을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축소해 조달하되 마지막 수단으로 국채를 조달하고자 하는 것"(신의진 원내대변인)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약속을 지키자니 돈은 필요한데, 원래 약속했던 방안으로는 기껏해야 예산의 10분의1인 6천억원 수준밖에 마련할 수 없다는 현실적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민주통합당은 일단 '박근혜표 복지 공약'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고 있다. 다만 재원 마련은 '국채 발행'이 아니라, 세율 조정 등을 통한 정상적 세수 확대를 통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국회 기획재정위 간사인 김현미 의원은 "부자 감세를 철회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채를 발행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명박정부 시절 논란이 됐던 이른바 '부자 감세'를 원상 복구해 증세만 제대로 해도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는 것.

현행 3억원인 소득세 최고세율(38%) 적용 구간을 1억 5천만원으로 낮추거나, 금융소득 종합 과세 기준을 2천만원으로 조정하자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27일 "사실상 합의된 내용이 부자 증세인데도 민주통합당이 명분에 집착해 보여주기식으로 가고 있다"(이한구 원내대표)며 역공을 폈다.

여야가 공감대를 이룬 △지분 2%, 시가총액 50억원 이상 대주주로 주식양도차익 과세 대상 확대 △고소득 자영업자의 최저한세율 45%로 인상 등으로도 '할 만큼 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박근혜 당선인과 새누리당의 '국채 발행' 계획에 대해 정치권 바깥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끝이 보이질 않는 경기 불황에 가계부채 문제도 심각한데, 나랏빚까지 늘리면 재정 건전성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한기 경제정책팀장은 "측정 기준이 바뀌면서 기존에 부채로 잡히지 않은 부분도 추가돼 국가부채가 더 늘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도 국채를 발행하겠다는 건 이런 고려조차 전혀 하지 않았다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비단 정부 재정뿐 아니다. 가뜩이나 좋지 않은 금융 시장에도 악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 임희정 박사는 "선진국 경우에도 저금리 기조속에 양적 완화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국가 부채가 늘어나면 그렇잖아도 원화 가치 상승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에서 자금 불안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국채 발행은 경기 부양을 위해 사용하지만, 이번 사안은 그런 용도도 아니라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이번 '박근혜표 복지 예산'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박 당선인이 선거운동 기간 이래저래 내건 공약들에 필요한 예산만도 5년간 131조원을 넘어선다.

인수위원회 단계부터 현실성 있는 재원 대책 마련에 몰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zzle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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