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이른바 '보이스피싱'(전화 금융사기) 피해 보상 기준에 대한 개선 작업에 나서, 사실상 전무했던 은행권의 보상 책임이 강화될 전망이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전자금융거래법 등 은행권의 보이스피싱 피해 보상 기준에 대한 법률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건당 수백만원, 최대 수천만원의 피해가 발생해도 은행들은 사실상의 '면책조항'을 근거로 그동안 보상에 소극적이었다는 이유에서다.
현행 '전자금융거래 기본약관'에 따르면, 전자금융 사고가 일어났을 때 일차적인 과실 책임은 은행 등 금융회사에 뒀다.
하지만 기본약관 2항은 '사기범 등 제3자가 권한없이 이용자의 접근매체로 전자금융거래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았거나 쉽게 알 수 있던 경우' 은행권에 면책권을 부여하고 있다.
전자금융거래법 10조도 금융회사가 접근매체의 도난·분실을 통보받기 전에는 배상책임이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보이스피싱 피해는 소비자의 '중과실'로 간주돼, 그동안 은행권의 보상이 뒤따르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복잡한 전화금융 사기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소비자가 과실 여부를 직접 입증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료사고'의 경우와 유사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이기웅 간사는 "소비자들에게 과실 입증 책임을 떠넘기는 은행권 방식에는 문제의 소지가 많다"며 "은행권의 본인확인 의무 역시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9월 말까지 경찰에 접수된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는 1만 2천 886건. 피해 액수는 1천 516억원에 이른다.
올 들어 9월말까지 접수된 피해 건수도 4천 642건, 규모는 497억원에 이르는 상황이다.
신고하지 않고 넘어간 소액 피해 사례까지 감안하면 실제 피해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보이스피싱이 갈수록 극성을 부리면서, 카드사들의 경우엔 지난해 본인 확인 의무를 강화하고 피해 금액의 40~~50%를 보상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반면 은행권은 "보이스피싱 피해 책임은 전적으로 속아넘어간 피해자에게 있다"는 입장이어서, 이번 금융당국의 움직임에도 반발하는 분위기다.
한 시중 은행 관계자는 "이 문제는 사회 공헌 차원에서 접근할 성격이 아니다"라며 "피해 보상을 놓고도 범죄 악용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당국은 일단 피해자의 과실 정도와 은행의 책임 소재를 공정하게 반영할 수 있는 기준 마련에 주력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토대로 피해 보상이 가능한 사례와 그렇지 않은 사례를 나눠, 은행권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소비자 본인이 신상정보를 유출시켰더라도 금융사에 손해배상 책임을 묻도록 한 '개인정보보호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하고 있어, 당국의 최종 판단이 주목된다.
zzlee@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