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있는 삶도 좋지만"…'PC 자동오프제' 논란

 

금융권 노사가 내년도 3% 임금 인상에 합의, 15일 최종 타결에 나선다.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2012년도 임금단체협약에 사실상 최종 합의하고, 이날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조인식을 갖는다.

노사 양측은 먼저 임금 인상 폭을 3.3%로 합의했다. 이 가운데 노조는 0.3%를 반납해 대학생 무이자 학자금 대출 등 사회 공헌 활동에 기부하기로 했다.

사측도 직원들이 내는 금액과 같은 규모로 출연하기로 해, 규모는 약 4백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텔러 행원의 무기계약직 전환 기간은 기존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올해 채용된 직원의 경우 내년부터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으로의 전환이 가능하다.

양측은 또 핵심 쟁점이던 '근로시간 정상화'를 위해 매일 오후 7시 자동으로 업무용 컴퓨터를 끄게 만드는 이른바 '19시 PC 자동 오프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선 은행 직원들의 반응은 대체로 시큰둥한 편이다. 취지야 좋지만 실효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직원은 "지켜지기 어려울 것"이라며 "날짜를 정해놓고 하면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고 할 수 있겠지만 매일매일 그렇게 일찍 퇴근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셔터'를 내리는 오후 4시 30분에야 본격 업무가 시작되는 은행 특성상, 야근을 줄이려면 근본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또다른 은행 직원은 "사실상의 업무는 하루종일 고객에 치인 뒤인 오후 4시 30분에 시작된다"며 "추징도 하고 연체자 관리도 해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남아서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 개선이 시급하다"고 했다.

과도한 근로 시간도 문제지만, '실적 중심' '영업 중심'의 경영 행태 먼저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입행 시절만 해도 '은행인'임이 뿌듯했지만, 해가 갈수록 '세일즈맨'으로 변질돼 허덕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영업 실적 1위부터 400위까지 모조리 벽보에 내다붙이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은행원들을 짓누르는 과도한 스트레스는 해소될 수 없다는 얘기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실적 중심의 문화나 할당제, 업무량을 손대는 게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금융노사 양측도 이러한 논란을 의식한 듯, 'PC 자동 오프제'의 구체적 방안은 개별 은행마다 협상하도록 했다. 개별 협상이 진행될 연말까지 논란이 불가피한 대목이다.

또다른 은행 직원은 "요즘에 '저녁이 있는 삶' 같은 얘기도 나오면서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건 긍정적이지만, 일을 해야 할 부분도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저녁이 있는 삶'. 우리 모두의 꿈이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아 보인다.

zzle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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