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권 놔둔다더니…'하우스푸어' 두 번 울리나

 

금융권이 '하우스푸어' 지원책으로 내놓은 '트러스트앤리스백'(trust and leaseback) 제도가 소유권은 그대로 놔둔다던 홍보 내용과 달리, 주택 소유권도 은행에 넘기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108만 가구에 이르는 '하우스푸어' 대부분이 소유권은 그대로 유지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어, 10월초 시행을 앞두고 혼선이 예상된다.

'트러스트앤리스백'은 가계부채 부실이 우리 경제의 최대 문제로 떠오르면서 봇물처럼 쏟아진 하우스푸어 대책 가운데 대표적인 제도이다.

우리금융지주는 지난 11일 발표 이후 "집주인이 소유권은 그대로 갖되, 대출 이자 대신 월세만 내면 된다"며 대대적으로 이 제도를 홍보해왔다.

당초 검토됐던 '세일앤리스백'(매각후 재임대)이 소유권도 넘어가는 반면, '트러스트앤리스백'(신탁후 재임대)은 소유권을 그대로 보장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홍보 내용과는 달리, '트러스트앤리스백' 역시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한 채무자의 소유권을 은행에 넘기는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지주 고위 관계자는 CBS와의 통화에서 "신탁회사에 담보 물건을 신탁하는 과정에서 등기 명의가 넘어가게 돼있다"며 소유권 이전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세일앤리스백'이 곧바로 주택을 매각하는 반면, '트러스트앤리스백'은 몇년간 유예를 주는 게 다르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신탁법상 명의가 이전되지만, 채무만 상환하면 우선적으로 되살 수 있는 '바이백 옵션'이 주어진다"며 "실질적 소유권은 그대로 있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원리금 상환조차 힘들어 법적 명의를 넘기게 된 채무자가 과연 최대 5년안에 모든 채무를 갚고 주택을 되살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채무자는 명의 이전을 통해 소유권을 빼앗기는데도, 재산세 부과 등 '소유자'로서의 의무는 다해야 하는 황당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현행 신탁법과 대법원 판례상, 우리금융지주가 채택한 '관리 신탁'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담보가 넘어가면 소유권도 넘어갈 수밖에 없는 걸 알면서도, 금융권이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를 해왔다는 것이다.

금융연구원 김동환 박사는 "기존의 관리신탁에선 수탁자한테 담보를 넘길 때 소유권이 이전된다"며 "소유권 이전을 막으려면 '담보권 신탁 제도'를 도입하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채권자인 은행이 주택의 담보권만 신탁받아 사용·수익을 맡되, 처분 권한은 갖지 않게 되면 이런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지주측은 "우리는 담보권이 아니라 처분 권한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소득의 40%이상을 원리금 상환에 메우는 '하우스푸어'는 108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10%에 이르고 있다.

이 가운데 8.4%인 9만 1천 가구는 이미 원리금 상환이 불가능하며, 30.4%인 33만 가구는 대출 연장 없이는 파산 위기에 몰릴 상황에 처해있다.

'집없는 설움'이야 더 말할 나위 없지만, 금융권의 얄팍한 대책 앞에 하우스푸어들의 '집있는 설움'도 커지게 생겼다.

zzle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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