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반환 미군기지의 환경 치유와 관련, 미군에 비용을 분담시킬 수 있다는 법률 검토 결과를 내고도 이를 공개하지 않은 사실이 CBS 취재 결과 드러났다.
정부는 환경 오염 수치의 기준에 대해서도 국내법 기준을 요구할 수 있다는 유권 해석을 내렸지만, 정작 미국과의 협상에선 이를 제대로 요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 전망이다.
◆법률 검토 결과 "미군에 원상회복 책임"=정부가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에 제출한 '반환기지 환경치유 관련 국방부 법률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국방부는 작년 7월 '제9차 한미 안보정책구상(SPI)'을 앞두고 협상을 위한 법률 검토 작업을 벌였다.
해당 보고서는 SPI 직전인 작년 6월 국방부가 비공개리에 자체 작성한 것으로, 반환 기지의 환경 치유 문제에 대한 유권 해석이 담긴 유일한 문건이다.
국방부는 이 보고서의 '결론'<아래사진 참조>을 통해 "SOFA 해석상 주한미군이 공여지를 반환하는 경우 미군에 부담시킬 수 없다"면서도 "환경 오염에 관해서는 특별양해각서에 의해 원상회복 책임을 부담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미군 기지의 오염 치유 작업과 그에 따르는 비용은 미군이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법적 결론으로 도출된 셈이다.
◆치유 기준도 "국내 환경법 적용 가능" 결론=보고서는 또 환경 오염 치유의 기준에 대해서도 "오염 수치가 미국이나 대한민국의 법적 기준을 넘는 경우 인간 건강에 알려진,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것으로 주장할 수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동안 미국측은 환경 치유의 조건으로 이른바 'KISE'(Known, Imminent and Substantial Endangerment to human health)라는 자체 기준만 충족시키면 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앞서 보고서에 언급된 '인간 건강에 알려진,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기준'이란 바로 'KISE'를 가리킨다.
그러나 법률 검토 보고서는 미국측 주장과 달리, '대한민국의 법적 기준'인 국내 환경법 규정이 오염 치유에 적용돼야 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구체적인 치유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협상 이후 "구체적 치유 기준 없다" 해명=그러나 한 달 뒤인 작년 7월 열린 SPI에서 이같은 법률 검토 내용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환경 치유 비용 문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으며, 치유 기준 역시 미국측 입김이 고스란히 작용했다.
당시 반환이 합의된 15개 기지는 미국측이 "환경 치유가 완료됐다"고 통보한 곳으로, 기존 'KISE'에 사격장내 불발탄 제거 등 8개 항목을 추가한 수준의 치유만이 이뤄졌다.
외교부-환경부-국방부는 SPI 직후 합동 발표를 통해 "소파(SOFA) 절차에 따라 반환받기로 합의했다"면서 "구체적 치유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협상하는데 어려움이 있던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불과 한 달전 법률 검토를 통해 구체적인 치유 기준을 마련해놓고도, 정작 협상 이후에는 180도 말을 뒤바꾼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 관계자는 CBS와의 전화 통화에서 "어떠한 내용도 확인해줄 수 없다"며 함구로 일관했다. 국방부측은 또 "해당 보고서는 국회에 제출된 것이지, 언론 공개용이 아니다"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4천억 넘는 '혈세 투입' 불가피=이러니 오히려 목소리가 높아진 쪽은 우리 땅을 신음하게 만든 미국이다.
주한미군사령부는 SPI 이후 입장 발표를 통해 "미국 납세자들이 낸 비용으로 만든 시설물을 이전받게 되면서도, 엄격한 기준의 치유를 요구하는 한국측 처사는 부당하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에 따라 작년 7월 SPI를 분수령으로 미군기지의 환경 치유 비용은 한국이 전담하고, 치유 기준은 미국의 뜻에 따르는 방식이 사실상 대세로 자리잡았다.
특히 59곳으로 예상됐던 반환 기지 수가 SPI 이후 66개로 늘어나면서, 약 4천억원으로 추산됐던 환경오염 치유 비용도 훨씬 늘어날 전망이다.
결국 초기 협상에 패착을 둔 정부의 '굴욕 외교'로 인해 제대로 된 환경 치유조차 받지 못하고, 그 비용조차 고스란히 국민 혈세를 쏟아붓게 됐다.
국회는 오는 25일 청문회를 열어 이같은 문제점들을 집중 추궁할 예정이다. 송민순 외교부장관과 김장수 국방부장관 등 주요 공직자가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주한미군측 인사들은 이번에도 '참고인'이다.
2007-06-19 오후 10:1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