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강하다"…볼라벤 위력에 전국이 '공황'

 28일 한반도를 덮친 초대형 태풍 '볼라벤'의 위력은 지난 며칠간의 두려움만큼이나 강력했다.

초속 33m면 사람도 날아가게 만드는 강풍은 순간 최대 초속 51.9m까지 치솟았다.

2003년의 매미(초속 60m), 2000년의 프라피룬(58.3m), 2002년의 루사와 2007년의 나리에 이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초강풍이다.

가로수와 신호등은 잡초 뽑히듯 뿌리째 뽑혀나갔고, 가족들의 든든한 저녁을 지켜온 지붕은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다.

아이들이 뛰놀던 앞마당은 퍼붓는 폭우에 잠겨버렸다. 무너진 전봇대가 불러온 암흑의 새벽엔 건물 높이의 파도가 방파제를 비웃으면서 누군가에겐 '생의 전부'일 선박들을 덮쳤다.

 

◆오후 2시쯤 서울 강타…150mm 폭우 동반

이미 제주도를 강타한 '볼라벤'은 이날 오전 10시 현재 목포 해상을 지나, 초속 48.5km의 속도로 군산 서쪽 약 100km 해상까지 진입했다.

이에 따라 '풍전등화' 상황에 놓인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도 오전 9시를 기해 태풍경보가 내려졌다.

이미 경기도 포천 지역에 초속 20m 가까운 강풍이 부는 등 볼라벤의 체감 위력은 갈수록 더해가고 있다.

서울도 정오 무렵엔 초속 20∼35m의 매우 강한 바람이 불고, 29일까지 50∼100㎜의 폭우가 쏟아질 전망이다.

서해를 따라 북상하고 있는 볼라벤은 이날 오후 2~3시쯤 서울에 가장 가까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한반도 전 해상에는 태풍특보가 발효돼있고, 10m 넘는 파도가 일렁이고 있다. 충남 등 서해안에는 폭풍 해일 피해도 우려된다. 지난해 일본을 덮쳤던 해일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한 터다.

◆60만 가구 정전…어선 전복에 수십명 실종

볼라벤의 위력으로 전신주도 잇따라 무너지면서 지금까지 전국 60만여 가구에서 정전이 일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전력이 비상근무 인력을 투입해 전력 공급 재개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10만여 가구는 여전히 전기가 끊긴 상태라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밝혔다.

또 집중 호우로 지금까지 제주와 남부 지역에서만 2천여 대의 차량이 침수되거나 파손돼 100억 원의 피해가 난 것으로 보험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이날 새벽 볼라벤이 강타한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와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에서는 거대한 파도가 방파제를 덮쳐 마을이 침수됐다. 고압 전선이 끊겨 2만 6천 가구가 정전됐다.

전남 강진군 군동면과 완도군 약산면에서도 하염없이 주택이 무너져내렸고, 1만 5천여 가구가 암흑 속에 새벽을 보내야 했다.

오전 2시 40분쯤엔 제주 서귀포시 화순항 인근 해상에서 중국 어선 2척이 전복돼, 선원 34명 가운데 28명이 실종됐다.

나머지 3명은 폭풍우와 집채만한 파도를 뚫고 육지까지 1.8km를 필사적으로 헤엄쳐 나와 목숨을 건졌고, 3명은 구조됐다.

제주와 광주에선 차량 운행을 돕던 교통신호기 12곳과 가로등 3개가 파손됐다. 시민들에게 그늘을 제공하던 가로수도 전남 56그루, 광주 26그루, 제주에서 2그루가 쓰러졌다.

◆바닷길 하늘길도 막혀…각급 학교는 휴업중

현재 해안가와 저지대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 262곳 1천여 명이 대피중인 상태다. 많은 비가 내린 나주와 남평 등 전남 지역엔 영산강 수위가 올라가면서 홍수 경보도 발령됐다.

인천과 서해 섬을 오가는 13개 항로, 군산∼선유도를 비롯한 5개 항로 등 서해상의 모든 뱃길은 전면 통제돼있다. 심지어 목포대교 같은 교량들의 통행됐고, 서해대교 역시 이날 오전중 전면 통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늘길도 막혀 대한항공 경우 이날 국제선 41편이 결항했고, 국내선 139편은 모두 뜨지 못했다.

열차 운행도 차질을 빚고 있다. 이날 오전 6시 30분쯤 강풍에 날라온 8m 크기의 지붕 판넬이 차체 하부에 끼면서, 광주발 순천행 무궁화호 열차의 운행이 44분간 중단되기도 했다.

이처럼 볼라벤 피해가 늘어나면서 전국 대부분의 초등학교와 유치원 등은 이날 하루 휴업에 들어갔다.

매머드급 태풍을 처음 경험해볼 초등학생과 유치원생들은 테잎이 십자로 붙여진 베란다 창문 너머로 동네 문방구와 친구네 집을 덮치는 강풍의 위력을 목격하고 있다.

◆29일까지 영향…14호 '덴빈'도 한반도로 북상중

'볼라벤'은 이날 오전중 충남 서해안을 거쳐 오후 3시쯤 서울 서쪽 약 170km 부근 해상까지 다가온 뒤, 이날 저녁 옹진반도 부근에 상륙할 예정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미 비상근무 체계를 최고단계인 3단계로 올렸으며, 23개 관련부처와 기관 모두 비상근무에 돌입했다.

강풍이 몰고다니는 폭우는 앞으로도 전국에 100mm 이상 쏟아질 전망이다. 완도 보길도와 지리산 등엔 벌써 150㎜ 넘는 비가 퍼부었다.

강풍에 폭우가 흩날리면서 볼라벤이 지나가는 지역에선 앞을 보지 못할 정도다. 서울, 경기도와 강원도 영서 지방엔 29일 새벽까지도 비가 계속 내릴 예정이다.

'15호'가 지나가도 이 악몽같은 상황은 끝나지 않는다. 14호 태풍 '덴빈'이 타이완 부근 해상에서 한반도를 향해 동북진하고 있다.

중심기압 975헥토파스칼(hPa), 중심최대풍속 초속 36m인 '덴빈'은 30일쯤부터 한반도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zzle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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