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1초' 오심으로 신아람과 대한민국을 울린 2012 런던올림픽. 대회 주최측과 국제펜싱연맹(FIE)의 행태가 점입가경이다.
오심에 대한 제소는 돈만 받고 기각하더니 느닷없이 신아람에게 상을 주겠다고 나선 것. 그야말로 '병주고 약주기', '뺨때리고 어르기'의 극치다.
FIE는 지난달 31일 보도자료를 내어 "기술위원회는 한국의 항의를 기각했다"며 "결론적으로 적절한 결론이 내려졌다고 승인한다"고 밝혔다.
하루 전날 한국 선수단은 신아람(26)과 독일 하이데만의 여자 에페 준결승전때 "연장전 마지막 1초에 세 번의 공격을 막아내고 네 번째 공격을 허용하는 동안에도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며 공식 기구인 기술위원회에 제소했었다.
이와 관련,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한국이 국제펜싱연맹에 정식 제소하려면 일정액의 돈을 보증금으로 맡겨야 한다는 말을 (장내 방송으로) 들었을 때 관중들은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FIE 규정에 따르면, 판정에 항의해 제소하기 위해서는 미리 심판위원회에 '항의 예치금'을 내야 한다. 항의 남발을 막겠다는 취지라지만, 이유가 없다고 기각되면 고스란히 대회 조직위원회의 경비로 흡수되는 돈이다.
이를 두고 미국 스포츠 전문 웹진 '블래처리포트'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FIE가 저지른 가장 극악무도한 범죄(the most heinous crime)"라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금전적 이익과 무관해야 할 올림픽의 근본 정신에도 정면 위배된다는 얘기다,
항의 예치금은 대회마다, 종목마다 각각 다른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선수단이 이번 신아람 경기 판정 제소를 위해 예치한 금액은 미화 80불(약 9만원). 반면 지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인도 남자하키팀은 국제하키연맹(FIH)에 두 번 제소했다 기각되면서 1천 유로(당시 약 140만원)를 날렸었다.
FIE가 이번에도 돈만 받고 신아람 판정 관련 제소를 기각한 이유는 이렇다. 테크니컬규정에 따르면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결정할 권한은 전적으로 심판에게 있다"는 것.
해당 규정은 "시계에 문제가 있거나 타임키퍼가 실수했을 경우 심판은 직접 얼마나 시간이 남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심판이 마음만 먹으면 1초를 1시간으로도 늘릴 수 있는 근거인 셈이다.
기술위원회는 "심판이 마지막 공격을 인정한 만큼, 기술위원회나 심판위원들은 이 결정을 번복할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권한도 없는데 왜 예치금까지 받는 공식 기구를 두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FIE는 이번 사건과 관련한 전세계적 비판을 의식한 듯, 신아람에게 '특별상'을 주기로 했다.
대한체육회 박용성 회장은 제소가 기각된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FIE가 신아람의 스포츠맨 정신을 높이 평가해 특별상을 주겠다고 제안했다"며 "이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FIE는 "이번 일은 누구의 판단 미스도 아니고 불가항력적인 사건"이라며 "신아람이 불행히도 불이익을 받게 됐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4년 땀의 대가' 대신, 전례도 찾기 힘든 특별상을 받게 된 신아람. "메달과 상관없이 참가에 의의를 두라"는 올림픽 정신은 일찌감치 한국을 염두에 둔 선견지명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