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7년 대선에서 'TV 토론'은 당시 김대중 후보의 탁월한 논리와 언변, 해박한 지식을 부각시키며 그의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
5년 뒤인 2002년 대선에서는 '인터넷'이 여론 형성과 지지 세력 결집의 주요 수단으로 기능하면서 당시 노무현 후보의 대역전극을 이끌어냈다.
바야흐로 다시 5년이 지난 2007년. 올해 치러질 대선에서는 'UCC'가 후보의 당락을 결정지을 핵심 미디어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UCC'는 '사용자 제작 콘텐츠'(User-Created Contents)를 줄인 용어로, 일반인이 직접 만들어 인터넷에 올린 콘텐츠를 통칭하는 말이다.
엄밀히 따지면 지난 2002년 대선 때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각종 패러디 포스터나 합성 사진도 모두 UCC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2007년 대선 국면에서 특히 주목을 받는 건 바로 '동영상 UCC'다. 기존 텍스트나 이미지 위주의 커뮤니케이션과는 달리, 장황한 설명 없이도 짧은 시간 안에 유권자들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버릴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지난해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뉴저지주 당선이 유력했던 공화당의 조지 앨런 상원의원이 막판에 '미역국'을 마신 건 그 좋은 예다.
선거를 3개월 앞둔 상황에서 거리 유세를 벌이던 앨런 의원은 인도계의 한 청년을 보고 혼잣말로 "마카카"라고 되뇌였다. '마카카'는 원숭이를 가리키는 말로, 유색인종을 비하할 때 쓰이는 단어다.
문제는 이같은 상황을 당시 현장에 있던 한 유권자가 동영상으로 찍어 웹상의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YouTube)'에 올린 것.
해당 동영상은 네티즌들 사이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결국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인 앨런 의원은 공개 사과했음에도 불구, 민주당 짐 웹 후보에게 의원직을 내주고 말았다. 짤막한 동영상 하나가 선거의 당락을 180도 뒤바꿔 놓은 것이다.
오죽하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2006년의 인물로 '당신(You)'을 선정하면서, 그 배경으로 "유튜브 같은 공간을 통해 지구촌 미디어 영역을 장악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물론 우리 나라에서도 '동영상 UCC'의 막대한 영향력은 이미 입증되고 있다. 지난 2004년 17대 총선 때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의 이른바 '노인 폄하 발언' 파문은 그 단적인 사례다.
한 대학생 인턴 기자가 찍은 동영상 하나 때문에 그는 의장직을 내놔야 했고, 당초 탄핵 역풍에 힘입어 200석 확보를 내다봤던 열린우리당은 영남 표 상당수를 한나라당에 다시 빼앗기고 말았다.
지난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이른바 '박계동 술집 동영상'도 UCC가 정치에 미칠 수 있는 막대한 영향력을 잘 보여준다.
촬영자 미상의 동영상이 온라인을 통해 순식간에 퍼지면서 당시 박 의원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난은 빗발쳤다.
특히 주목할 것은 아직까지도 시민들이 박 의원 하면 '술집 동영상'을 떠올릴 정도로 파급력 못지 않게 '동영상 UCC'의 지속 효과 또한 강력하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을 놓고 "대중이 엘리트 권력을 포위하는 추세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김헌태 소장은 "인터넷을 통해 대중이 정치인 등 우리 사회의 엘리트를 감시하는 체제가 가속화되고 있다"면서 "특히 이번 대선에서 동영상 UCC는 돌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내다봤다.
수많은 유권자들이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포착한 영상을 눈깜짝할 사이에 대량 배포할 수 있는데다, 단 1초의 영상일지라도 가장 명확한 '팩트'(fact)를 전달하기 때문에 파급 효과가 클 수밖에 없다는 것.
이번 대선 일정에서도 특정 후보를 다룬 '동영상 UCC'가 과연 어느 국면에서, 누구에 의해 튀어나올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또 특정 후보의 단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네거티브 형식'이 될 지, 아니면 후보의 숨은 장점을 강렬하게 홍보하는 '포지티브 형식'이 될 지도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짤막한 동영상 하나가 그동안 후보가 쌓아올린 모든 것을 허물 수도, 아니면 반대로 한방에 띄울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2007-01-12 오후 11: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