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8일, KBS 드라마 '각시탈'의 보조출연자를 태우고 촬영현장으로 향하던 관광버스가 전복되어 보조출연자 박희석(49)씨가 사망한지 두 달이 다 되어가고 있지만 유족들의 시위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유족 측은 "KBS를 비롯한 관련 회사들이 진정성 있는 사과 없이 오히려 유가족을 보상금과 관련한 돈 문제로 연결 짓고 있다"며 울분을 터뜨리고 있다.
지상파를 포함 케이블, 종편에서 제작되는 드라마는 한 해 100여 편 이상.
한 편의 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 수많은 연기자와 스텝들이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보조출연자는 필수적인 존재다. 그러나 보조출연자들의 근로 환경은 화려함 뒤의 어두운 그림자와도 같다.
이들이 받는 일당은 4만 2000원. 여기에 이것저것 수당을 포함해도 손에 쥐는 돈은 적게는 한 달에 15만원, 많아 봐야 100만 원 정도가 고작이다. 특히, 촬영 환경은 '인생막장'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열악한 곳이 많다.
"소품은 조금 비싸면 조심스럽게 다루거든요. 사람이라 그런지 소품 취급조차도 안 될 정도로... 소, 돼지 이런 식으로 저희가 표현을 하거든요, 보조출연자를 그렇게 대접을 한다고." "탈의실이라는 거는 생각할 수도 없고, 남녀가 서로 뒤돌아서 보지 말자, 화장실은 전체가 화장실이고..." "인생막장이 노가다판인줄 알았더니 인생막장이 바로 여기야. 노가다판에 가도 이렇게는 안 해요"
하지만 드러내놓고 불만을 토로하는 보조출연자는 거의 없다고 한다.
현재 여의도에서 활동하는 보조출연자만 10만 명 정도. 공급보다 수요가 넘쳐나는 보조출연자 시장에서 불만은 곧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는 답변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방송국, 드라마 제작사, 용역업체, 보조출연자로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대답 없는 메아리일 뿐이다.
지난 11일 새벽 0시 30분 여의도 MBC 앞.
20대부터 60대를 훌쩍 넘긴 이들까지 어림잡아 몇 백 명은 돼 보이는 사람들이 드라마 보조출연을 하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무슨 역할이냐, 지금 가면 촬영은 언제 끝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모른다. 기약 없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새벽 1시, 이들은 이름, 주소, 계좌번호 등 출연료를 받기 위한 간단한 일지를 쓰고 반장의 짧은 설명을 들은 후 촬영장으로 떠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보조출연자도 똑같은 연기자잖아요. 종이나 이런 게 아니고 똑같은 사람으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어느 60대 보조출연자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