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업체' 삼성물산이 미군기지 환경오염 치유 시공사


주한미군이 반환기지의 오염된 토양을 정화하면서 미등록 업체인 삼성물산을 단독 시공사로 선정한 사실이 CBS 취재결과 드러났다.

이에 따라 한미 양국의 외교적 군사적 현안이자, 국내에서도 민감한 사안일 수밖에 없는 반환기지의 환경 오염 치유 문제가 지나치게 미국 일방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단독 시공 맡은 삼성물산은 '미등록업체'=주한미군은 지난 7월 14일 열린 한미안보정책구상(SPI) 회의에서 합의된 내용에 따라 일부 반환기지의 지하수에서 발견된 부유기름을 '바이오슬러핑 공법'으로 제거하기로 했다.

바이오슬러핑 공법은 땅속에 진공을 가해 지하수 윗부분의 기름을 추출해 회수하는 기술로, 지난 1월 30일 라포트 전 연합사령관이 제안했던 방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미군은 이같은 합의가 있기 전인 지난 6월 이미 바이오슬러핑 작업을 맡을 업체로 삼성물산을 선정, 6개월짜리 용역계약을 맺었다.

삼성물산은 지난 2000년 공개입찰에서 시공사로 선정된 이후 매년 계약을 갱신하며 주한미군의 환경오염 치유 사업을 도맡아왔다.

문제는 현행법상 삼성물산이 이같은 작업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난해 개정된 토양환경오염보전법은 오염된 토양을 정화할 때는 환경부장관에게 등록한 업체에 한해서만 위탁할 수 있게 했고(제15조의3 2항), 또 등록업체만이 이 작업을 벌일 수 있다(제23조의7 1항)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토양정화업 등록업체 43곳 가운데 삼성물산은 포함돼 있지 않다. 한마디로 무등록 업체라는 것.

따라서 미군과 삼성물산의 계약 자체가 위법인 셈이다.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열린우리당 우원식 의원은 "신음하는 우리 땅의 치료를 무면허 의사에 게 맡긴 꼴"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현행법상 무등록 업체가 토양 정화 작업을 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특히 무등록 업체인 삼성물산이 오염 치유를 맡은 땅이 다른 곳도 아닌 미군 주둔지였다는 점에서 국민적 관심과 함께 향후 논란이 일 전망이다.

◇삼성물산, 오염 가장 심각한 곳 맡아=미군과 삼성물산의 계약에 따라 환경오염 치유 작업이 벌어지는 곳은 주한미군 반환기지 다섯 곳이다.

춘천의 페이지 캠프와 경기도 파주의 에드워드 캠프, 또 의정부의 폴링워터 캠프와 시어즈 캠프, 에세이욘 캠프 등이 이에 해당한다.

환경부가 지난 7월 공개한 미군기지 오염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반환이 이뤄진 미군기지 15곳 가운데 13곳은 토양오염이 매우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가운데 8곳은 지하수 오염까지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는데, 삼성물산이 맡은 다섯 곳은 토양과 지하수의 오염이 가장 심각한 곳들이다.

춘천 페이지 캠프의 경우 지하수에선 기준보다 무려 472.6배나 많은 TPH라는 오염물질이 검출됐고, 토양에선 기준보다 101배 많은 TPH가 발견됐다.

기준 초과도 문제지만 오염 면적이 넓다는 것도 큰 문제다.

의정부 시어즈캠프의 경우 총면적의 40% 이상이 오염돼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결국 오염 치유가 매우 시급한 지역에서 무등록 업체인 삼성물산이 해당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삼성물산 "소파협정 따라 국내법 적용 안 받아"=앞서 언급한대로 현행법에 따르면 미군과 삼성물산의 계약 자체가 위법이다.

하지만 미군은 소파 협정에 따라 국내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주한미군 입장에서는 지난 2000년부터 삼성물산이 오염 치유 사업을 맡아왔던 만큼, 이번에도 한국의 관련법 개정이 이뤄진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계약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물산 역시 그동안 미군과 관련 사업 전체를 포괄적으로 계약해 진행해왔던 것이며, 환경부에 등록된 전문업체에 하청을 주고 있는 만큼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미군과의 계약은 포괄적인 '턴키' 방식으로 맺은 것이며, 개별적인 파생 문제는 삼성물산에 일임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측은 특히 무등록 업체인 자신들이 계약을 맺은 게 설령 불법이라 하더라도, 소파 협정에 따라 자신들 역시 국내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소파 규정이 미군에 적용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미군과 계약 맺은 부분까지 다 적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미군과 삼성물산의 입장을 살펴보면, 환경오염 치유 사업 자체가 소파 협정과 국내법의 경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벌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관부처는 맡은 사실조차 몰라=그러나 환경부는 "미군과 삼성물산이 계약을 맺을 때 이러한 문제에 대해 문의를 받거나 협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문제를 바라보는 환경부의 시각은 삼성물산의 입장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정확히 판단하긴 힘들지만 상식적으로 봤을 때 미군기지내 정화 작업을 한다면 국내 등록업체가 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국내 업체의 위법 사실인만큼 국내법 테두리 안에 있다는 것.

다만 환경부도 미군기지를 둘러싼 문제는 언제나 첨예한 사안인만큼 매우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군 기지의 토양 오염에 대한 기준을 정할 때도 정부측과 미군 사이에는 이견이 있다는 설명이다.

또 미군기지가 땅은 우리 땅이긴 하지만, 법 적용에 있어서는 국내법이 적용되지 않는 지역이란 점도 환경부를 고심하게 만들고 있다.

심지어 주관부서임에도 불구하고 반환기지의 환경오염 치유를 어느 업체가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형편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 문제와 관련해 "그런데 반환기지 오염 치유 작업을 어느 업체에서 하고 있느냐, 외국계 회사냐"고 되묻기도 했다.

결국 주한미군 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국방부가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사이, 환경 오염 같은 제반 문제점들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될 정부 부처들이 사실상 논의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2006-09-06 오전 2: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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