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기소 독점주의' 무너지나


검찰이 고소 사건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릴 경우, 국민이 직접 기소여부를 심사해 공소를 제기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추진된다.

이는 50년 넘게 형사소송의 근간을 이뤄온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사실상 뒤엎는 것이어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공소 제기 최종판단에 국민이 직접 참여=검사만이 공소권을 갖도록 한 현행 형사소송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정치권에서 일고 있다.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 등 야당의원 11명이 최근 발의해 제출한 '국민의 고소사건 재정심사 참여에 관한 법률'이 그것으로, 현재 이 법안은 국회 법사위에 계류돼 있는 것으로 CBS 취재결과 확인됐다.

해당 법안의 골자는 검사가 항고에서 불기소 처분을 내린 고소사건에 대해 일반인 다섯 명으로 구성된 재정심사부가 직접 심사해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 검찰의 공소권 행사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투명성을 강화하자는 게 그 취지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장윤석 의원은 "종래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한 국민 신뢰가 무척 낮았다"며 "이에 따라 불기소처분에 대한 통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됐다"고 추진 배경을 밝혔다.

법원이나 헌법재판소 또는 검찰 내부의 통제보다는 국민이 직접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참여하게 되면,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될 것이란 설명이다.

장 의원은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도 이미 검찰의 공소권 행사에 대해 기소배심이나 검찰심사회 등 국민참여형 통제제도를 실시하고 있다"며 "가장 국민 참여적인 내용의 법안이기 때문에 참여정부도 각을 세우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이번 정기 국회에서 이 법안이 통과될 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정심사부 의결하면 검찰 반드시 기소해야=해당 법안은 그 파격적 내용만큼이나 실효성 측면에서도 강력한 장치를 더했다.

재정심사부에서 기소를 해야 한다는 의결이 나오면 검찰은 반드시 공소를 제기해야 한다고 규정했기 때문.

법안에 따르면 재정심사는 모든 고소 고발 사건을 신청 대상으로 하며, 각 지방검찰청에 설치되는 재정심사부가 맡게 된다.

재정심사원은 각 시군구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사건별로 후보자를 선정하며, 선정된 재정심사원들은 1주일 동안 직무를 수행한 뒤 공소 제기 여부를 만장일치로 결정하게 된다.

다만 5명의 심사원 사이에 의견이 엇갈릴 때는 다수결로 의결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의결이 내려지면 해당 지방검찰청 검사장은 그 결과에 따라 반드시 공소를 제기해야 한다고 명문화해 실효성을 담보했다.

◇ 기소독점주의 사실상 전면 부정=기소 여부를 최종적으로 국민이 결정한다는 이같은 법안 내용은 결국 기소독점주의를 사실상 전면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기소독점주의는 지난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우리나라 형사소송 구조의 근간을 이뤄온 제도로, 기소 여부를 독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검찰에 막강한 힘을 실어준 장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해서는 국민 신뢰가 무척 낮았다"는 게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의 지적이다.

그동안 공소권을 독점해 온 검찰로서는 강하게 반발할 수밖에 없음은 물론이다. 실제로 검찰 내부에서는 이 법안에 대해 "검찰의 기소권을 전면 부정하는 결과를 낳아 검찰의 무력화를 가져올 수 있다"며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현행 재정신청제도와 정면 배치=현행 형사소송법에서도 고소인이 검사의 불기소 결정에 불복할 경우 법원에 그 결정의 옳고 그름을 묻는 재정신청제도가 있긴 하다.

그러나 이를 처리할 법원 인력에 한계가 있는데다, 재정신청 대상 범죄가 공무원의 직권남용과 가혹행위 등 공무원 범죄에 한정돼 있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높다.

열린우리당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문병호 의원은 "재정신청 건수 자체가 적은 게 사실"이라며 "원래는 모든 범죄가 대상이었지만 유신 시절에 지금처럼 범위가 크게 제한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행 제도와 추진되는 법안 내용은 범위의 규모도 다르지만, 특히 그 주체가 법원이 아닌 일반 국민 등으로 구성된 재정심사부가 된다는 점에서 가장 큰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다.

◇사개추위 법안과 정면 충돌 예상=이번 법안은 현행 제도는 물론 여권이 추진하고 있는 사법개혁안과도 정면 배치된다.

대통령 직속 기구인 사법개혁추진위원회는 지난 1월 국회에 일련의 사법개혁안을 제출했다. 이 가운데는 검찰의 기소독점을 견제하는 방안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포함돼 있다.

사개추위의 개정안은 재정신청 대상 범죄를 모든 범죄로 확대한다는 점에서 이번 국민 재정심사 참여 법안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기소여부를 판단하는 주체를 여전히 법원으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역시 정면으로 배치된다.

특히 사개추위 개정안은 법원이 기소여부를 결정하고 다시 재판해야 한다는 모순을 안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장윤석 의원은 "불기소 처분 당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어찌보면 재판에 가까운 일"이라며 "그런데 기소 여부를 법원이 결정하는 것은 기소를 한 법원이 다시 재판을 하는 법리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기소권과 재판권의 분리라는 대원칙에도 문제점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차라리 국민들에게 불기소 처분의 당부를 맡기는 게 옳다"는 게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의 주장이다.

반면 열린우리당 문병호 의원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10월쯤 재정신청 확대안을 비롯한 사개추위 개혁안이 통과될 것"으로 전망했다.

문 의원은 법리적 모순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선 "검찰에서도 일부 이런 지적을 하고 있지만, 법리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기존 사학법 재개정을 둘러싼 여야 의견 대립은 물론, 국민재정심사 참여 법안과 사개추위 개정안을 놓고도 첨예한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2006-09-03 오후 8:4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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