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cutView]송전탑과 밀양의 '눈물'



지난 2월 7일 경상남도 밀양시청 앞. 765킬로볼트(kV)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는 수십 개의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정문 왼쪽에는 지난 달 16일 분신 자살한 고(故) 이치우씨의 빈소가 보였고 70~80대 할머니 할아버지 20여 명이 빈소를 지켰다. 현재 밀양에는 69개의 송전탑 설치를 놓고 7년째 한국전력(이하 한전)과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 "내가 죽어야 문제가 해결되려나"
이씨가 분신한 밀양시 산외면 보라마을 보라교 앞 도로 바닥 이곳저곳에는 불에 탄 흔적 위에 눌러붙은 소화기 가루들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현장에서 약 300m 가량 떨어진 논에는 송전탑 설치를 위한 건축자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지난 달 16일 용역업체 직원 50여명은 송전탑 공사를 강행했다. 공사를 막기 위해 고 이치우씨는 자신의 논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용역업체 직원들에 막혀 들어갈 수 없었다.

"내가 죽어야지 문제가 해결되려나"라고 연신 읊조리던 이씨는 결국 그날 오후 8시 자신의 몸에 기름을 붓고 분신자살했다.

같은 마을 주민인 김응록(71)씨는 "일생동안 벌어 놓은 것이라면 논 2000평 정도인데 여기에 송전탑이 들어서면 이 땅은 이제 대출도 안 되고 팔리지도 않는다"며 "한전은 합법적으로 허가를 받은 공사라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재산도 다 빼앗기고 알거지가 되기 때문에 맨몸으로 막을 수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7개월째 24시간 보초서는 노인들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은 차를 타고 산길을 따라 15분 정도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산골 마을이다. 3개의 송전탑이 들어서기로 한 이곳에도 부지를 다지기 위해 잘려나간 수많은 나무들이 을씨년스럽게 뒹굴고 있었다.

예정지 곳곳에는 공사에 필요한 포클레인이 서 있다. 그 바로 옆엔 공사를 막기 위해 비닐로 움막을 친 60~70대 노인들이 보초 아닌 보초를 서고 있다.

곽정섭(67) 할머니는 "공사가 시작되면 용역업체 직원들이 나무를 벨 수 없도록 나무를 끌어안아왔다"며 "그러면 직원들이 전기톱으로 위협하기도 하고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설을 하기도 한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남우(70) 할아버지는 "땅을 안 팔겠다고 하니 한전은 법원에 공탁금을 걸어놓고 땅 주인을 채무자로 만들어버리면서 공사를 강행한다"며 "우리로서는 본능적으로 공사를 막아낼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어 "그렇게 되면 용역업체가 업무방해로 고소 고발하기 때문에, 경찰서에 매일 조사를 받으러 가야 한다"고 한탄했다.

◆재산권이 아닌 생존권
'고 이치우 열사 분신 대책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준한 신부는 이번 사태에 대해 "보상금을 더 받기 위한 억지 부리기나 전형적인 님비 현상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밀양 주민들이 당하고 있는 재산권 침해는 다시 어떤 일을 해서 충족시킬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노후를 위한 생존의 권리를 박탈하는 문제"라는 것.

현재 밀양 주민들은 보상금 협의가 아닌 송전탑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전측은 전화 인터뷰를 통해 "공사 백지화는 불가능하다"며 "주민들과의 협의를 통해 공사를 진행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고수하고 있어, 갈등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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