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cutView]'참사'에서 '희망' 일군, 용산 며느리



집안을 들어서자 온통 분홍빛이다. 침대에서 커튼, 장식품에 이르기까지. 벽면을 가득 채운 웨딩사진들은 신혼의 향기를 물씬 더한다. 하지만 이곳은 남편이 한번도 발을 딛어보지 못한 정영신 씨만의 공간. 신혼 8개월부터 남편과 떨어져 새로 살 곳을 마련한 정 씨는, 3년 전 그때로 신혼의 시계를 멈춰놓은 상태다. 용산참사가 있던 그날이다.
그 지옥 같은 기억을 밀어내려 신혼 아닌 신혼방을 꾸며놓았지만, 악몽은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화마가 삼킨 망루, 그 안에서 숨진 시아버지, 그리고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 한 명의 죽음에 책임을 떠안아 구속된 남편 생각 때문이다.
"집을 나설 때는 불도 켜놓고 가요. 돌아와 잠을 자도 TV를 켜놓은 채 눈을 붙이는데, 한밤중에도 두세 번은 눈이 떠져요."
참사 이후 집밖에 나올 수도 없었던 정영신 씨가 정신을 차린 건 1년이 지났을 무렵. 생존권 투쟁에 한창인 다른 철거민들의 활동상을 접하고 이를 비롯한 투쟁들로 목숨까지 잃었던 이들의 삶을 누군가 일깨워줬다. 특히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 김진숙 지도위원의 분투를 보고는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게 됐다.
"나도 저렇게 해야 되겠구나. 그래서 개발로 인해 쫓겨나고 이에 저항하다 목숨을 잃는 일은 막아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남편과 함께 장사를 해오다 철거민의 신세로 밀려난 정영신 씨는 사회 운동가로 변모했고, 이제 정 씨의 직함은 '용산참사 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개선 위원회' 상임 활동가다. 그런 정 씨도 참사 현장엔 발을 들이기 꺼려하지만, 기자와 함께 다시 찾은 그곳을 보자 혀를 차며 울분부터 토했다. 재개발조합과 시공사와의 계약은 해지되고 철거문제를 둘러싼 법적 공방도 끊이지 않아 풀만 무성한 공터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3년이 지난 오늘까지 아무런 개발도 이뤄지지 않는데, 왜 그렇게 조급했을까요? 우리에게 조금만 시간을 줬다면 사람도 죽지 않고 감옥에 갈 일도 없었잖아요."
하지만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 것만은 아니다. 용산참사는 철거민들에 대한 인식을 조금씩 바꿔놓는 계기가 됐고, 재개발 제도의 문제점도 여실히 드러냈다. 정 씨는 "홍대 앞 두리반이나 명동 까페마리처럼 세입자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례들의 물꼬를 텄다"면서 "돌아가신 분들이 억울하지만 상처만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1%가 아닌 99%의 상당수는 세입자들"이라며 "나도 언젠가는 철거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더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부탁했다.
기대를 접자고 하면서도 끝내 기대를 접을 수 없는 건 남편 이충연 씨의 사면 석방. 이 씨는 아버지를 잃고 부상을 당한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가해자로만 몰려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다음 명절 때는 온 가족이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함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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